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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합격

본(Bonn) 대학교에서 공부할 때의 일이다. 한국에서 고등학교는 문과였고, 대학에서는 독일어를 전공한 내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부전공으로 컴퓨터공학을 공부하기로 했다. 훗날 내 박사논문 지도교수인 렌더스(Prof. W. Lenders) 교수가 논문 지도를 받고 싶으면 실력부터 갖춰 오라고 했으니 나는 기초부터 제대로 공부할 셈이었다. 첫 학기에는 몇몇 전공 수업을 들었지만, 두 번째 학기에는 오로지 부전공 딱 한 과목만 수강 신청했다. . 컴퓨터공학을 전공으로 공부하든, 부전공으로 택했든 꼭 통과해야 하는 과목이었다. 이 과목을 이수하지 못하면 부전공을 바꾸거나 대학을 옮겨야 했다. 계단식 강의실은 500명은 족히 돼 보이는 앳된 얼굴의 새내기들로 늘 도떼기시장 같았다. 교수는 수업 내내 여섯 면의..

전반전 이야기 2022.03.04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음이라'

코로나 염병이 창궐하기 몇 달 전에 여권이 만료되었다. 여권을 발급받은 지 그새 10년이 또 지난 것이다. 본(Bonn) 대사관 분관에서 새로 신청한 여권을 우편으로 받자마자 영주권을 갱신하러 아침 일찍 관할 외국인 관청(Ausländerbehörde)에 갔다. 빨리 일 처리하고 출근하려던 바람은 해당 창구 앞에 길게 늘어선 대기 줄에 물거품이 됐다. 대부분이 시리아에서 온 아랍계 외국인들이었다. '난민의 어머니'라 불리는 독일 전 수상 메르켈(Dr. A. D. Merkel)이 국경을 열어주어 내가 살던 동네에도 꽤 많은 난민이 살고 있었다.대기표도 없이 길게 늘어진 줄 끝에 자리를 잡자마자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Der Nächste!(다음 사람!)"나는 귀를 의심했다.'여기가 군대야? 수용소야..

전반전 이야기 2022.02.28

걸려 넘어져라!

독일의 한적한 마을이든, 복잡한 시내든 걷다 보면 길바닥에 10cm 크기의 정사각형 황동판이 박혀 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그 안에는 이름과 태어나고 죽은 날짜가 새겨져 있다. 사망 날짜는 독일 나치 정권이 집권하던 1933년에서 1945년 사이다. Stolpersteine(걸림돌), "걸려 넘어지는 돌"이라는 뜻을 지닌 황동판은 나치 정권의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그들이 살았던 집이나 일터 앞 길바닥에 박혀있다. 아래 여섯 개의 걸림돌들을 들여다보니 모두 성이 같다. 가족인 듯하다. 맨 오른쪽에는 이렇게 쓰여있다."1906년에 태어나 1942년 아우슈비츠(Auschwitz)로 끌려가 살해당한 율리우스 함부르거(Julius Hamburger)가 여기 살았다." 고개를 떨구고 걷다가 무심코 이런 황동..

전반전 이야기 2022.02.26

우리들의 축제

학생 때는 넉넉지 않은 주머니 사정 때문에, 직장 생활을 할 때는 시간이 여의찮아 한국에 자주 가지 못했다. 은퇴한 지금은 코로나로 묶여 옴짝달싹 할 수 없다. 참 얄궂다. 2~3년에 한 번꼴로 한국에 갈 때면 소풍날 받아놓은 아이처럼 들떠있었다. 인천 공항에서 짐을 찾아 게이트를 나서면 목을 길게 빼고 기다리던 가족들이 반가움 가득 우르르 다가왔다. 30년 동안 한결같은 풍경이다. 엄마가 늘 먼저 나를 알아보셨다."딸~"공항에 있는 수많은 딸 중에 엄마 딸인 나는 단번에 그 부름을 알아챘다. 어딘가에 앉아계셨던 아버지가 서둘러 오셔서 나를 꼭 안아주셨다. 족히 한 시간은 기다리셨으리라. 시간이 되면 언니, 남동생, 막냇동생이 부모님과 함께 나를 맞았다. 11시간 장거리 비행과 그전에 이미 3시간 넘게 ..

하프타임 2022.02.25

Team Autonomy

내가 퇴사했던 부서에는 부장이 없었다. 팀에 팀장도 없었다. 주임, 대리, 과장 같은 직급 역시 없었다. 대신 팀 안에서의 역할이 있었다. '품질 챔피언(Quality Champion)', '보안 영웅(Security Hero)', '설계 도사(Architecture Master)', ‘디자인 천재(UX‐Genius)’처럼 우스꽝스러운 이름이 붙은 역할을 팀원들이 상의하여 나눠 가졌다. 나는 품질 챔피언이었다. 이전 회사에서 소프트웨어 설계자 역할을 했던지라 설계 도사를 맡고 싶었지만, 내가 부서 이동으로 팀에 왔을 때는 품질 챔피언 역할만 남아있었다. 까짓~ 하지 뭐, 하고 맡은 역할이었는데 상당히 매력적이고 재밌었다. 팀 안에서 각 개발자는 개발 과제와 역할이라는 두 가지 임무를 수행했다. 예를 들어..

전반전 이야기 2022.02.22

내가 배낭을 메는 이유

"어휴, 그 배낭 좀 내려놔. 무겁지도 않아?"재작년 '막내막내'(아버지는 막내딸의 막둥이를 이렇게 부르신다)의 중학교 졸업식 때 기어이 막냇동생에게 한 소리 들었다. 그런데도 나는 조카의 졸업식 내내 배낭을 등짝에서 떼어내지 않았다. 아이의 졸업사진에는 큼직한 배낭을 멘 '독일 이모'가 보따리장수처럼 배시시 웃고 있겠지만 어쩌겠는가, 나도 어쩔 수가 없는걸. 나는 핸드백을 드는 대신 배낭을 멘다. 방수 잘 되고 등짝 편한 배낭은 내게 구찌고 루이비통이다. 내 배낭은 식당에서 밥 먹을 때면 충성스러운 개처럼 나의 발밑을 지킨다. 화장실 갈 때도 메고 간다. 어디를 가든 나는 배낭을 멘다. 대신 두 손은 자유롭다. 손에 든 것은 쉽게 잃어버릴 수 있으니 모든 소지품을 배낭에 쓸어 담고, 오직 배낭 하나만 ..

전반전 이야기 2022.02.21

은퇴는 처음이라

자발적 은퇴를 한 지 두 달이 넘어선다.두 달 남짓 동안 늘어지게 낮잠을 잔 적이 없으며 밤새워 넷플릭스로 한국 드라마를 본 적 또한 없다. 사실 나는 넷플릭스 계정이 없다. 집에 TV도 없다. 남편은 아침 6시, 나는 그보다 30분 늦게 일어난다. 먼저 잠에서 깬 남편은 과일과 오트밀을 꺼내 조리대 위에 올려놓고 달걀 두 알에 구멍을 뚫어놓는다. 식탁을 정리하고 샤워를 한 후에 나를 깨운다. 나는 씻고 부엌으로 가 과일을 잘게 썰고 오트밀을 우유에 불린다. 불린 오트밀에 채 썬 과일과 잘게 부순 호두를 섞는다. 달걀은 6분 반숙으로 익힌다. 이 스위스식 시리얼과 반숙 달걀이 우리의 아침밥이다. 내가 아침을 준비하는 동안 남편은 30분 정도 산책을 다녀온다. 집에서 몇 걸음만 걸으면 자연보호구역이다. 산..

하프타임 2022.02.17

지도자의 중요성

나의 시아버지 칼린은 2차 세계 대전 때 나치 독일군이었다.아내를 위해 부엌 창 앞에 빽빽이 장미를 심고 여기저기 후원을 아끼지 않는 평범한 할아버지 칼린이 영화에서 봤던, 피 한 방울도 나지 않을 듯한 나치 군인이었다니! 나는 칼린이 나치 정권 때 군인으로 어디에서 뭘 하고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조심스레 묻자 칼린은 어제 일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1925년 12월생인 그는 1943년 열일곱의 나이로 나치 정권에 징집됐다. 말 그대로 징집은 그의 선택 사항이 아니었다. 어린 나이에 전쟁터로 배정된 곳은 프랑스 서쪽에 위치한 항구도시 라로셸(La Rocelle)이었다. 그곳에서 패전 후 포로가 될 때까지 통신병으로 지냈다."자대 배치는 오로지 손가락에 달렸었지. 줄을 쭉 세워 놓고 너는 러시아, ..

그리고 후반전 2022.02.15

박사학위를 하다

1998년 4월, 나는 독일 본(Bonn) 대학교에서 전산언어학으로 박사학위를 했다.나는 '박사학위를 받았다.'라고 하지 않는다. 누가 내게 거저 줘서 받은 것이 아니니까.'공부를 마쳤다.'라고도 하지 않는다. 공부는 끝이 없으니까. 대략 설명하자면, 전산언어학은 사람의 글(Text)과 말(Speech)을 컴퓨터가 이해하여 출력값을 다시 자연언어로 변환하는 것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잘 알려진 구글의 번역기, 애플의 Siri 등이 이 학문의 대표적인 결과물이다. 자연언어 처리(Natural Language Processing)는 인공지능의 핵심 기능 중 하나로 현재는 컴퓨터공학의 세부 분야에 속하지만, 내가 공부하던 1990년대 본 대학교에서는 하나의 독립된 학과에서 다뤄졌다. 나는 전산언어학을 공부하기..

전반전 이야기 2022.02.09

MBTI는 과학이다?

"역시 MBTI는 과학이에요!!"내 MBTI 테스트 결과를 알려줬더니 한국에 있는 조카가 느낌표 팍팍 찍은 문자를 카톡으로 보내왔다. 올해 서른둘이 되는 조카와는 재테크와 관련해서 종종 대화를 나눈다. 성격 유형으로 투자 성향을 알 수 있다면서 조카는 어느 날 뜬금없이 MBTI 테스트를 권했다. 이모가 어느 유형일지 짐작은 가지만 한번 해보시라는 말도 덧붙였다.테스트 결과, 나는 ESTJ‐A(엄격한 관리자) 유형이다. 유형 설명을 나에게 비춰보자."훌륭한 질서는 모든 것의 기초이다."동의한다. "옳다고 생각되는 일은 거침없이 밀고 나가는 굳은 의지!"역시 동의 한다. "부족함을 인정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단다. 이건 동의 못 하겠다. 난 부족함을 숨기지 않으니까. 안 되겠다, 내가 누구인지 리스트를 ..

하프타임 2022.02.07

출생의 비밀

나에게는 출생의 비밀이 있다.아버지가 몰래 낳아 데리고 온 딸도 아니고 고 권사님이 내 엄마인 것도 맞다. 나는 주민등록표에 기재된 1968년도 겨울이 아닌 67년 가을에 태어났다. 서울특별시 종로구에서 내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지방에서 막 올라온 노동자였다. 딸내미 출생 신고하러 서울에서 본적지인 익산까지 가기에는 거리도 멀고 겨를도 없었다. 아버지는 당시 익산에 사셨던 할머니께 내 출생신고를 부탁하셨지만, 할머니는 까맣게 잊어버리셨다. 둘째도 손녀라 시큰둥하셨던 걸까? 그래도 좀 너무하셨다. 여러 해가 지나 이 사실을 아신 아버지가 부랴부랴 나를 68년생으로 뒤늦은 출생신고를 하셨다. 이렇게 내 가짜 생년월일이 생겨났다. 초등학교 입학통지서 역시 동사무소 직원에게 돈 주고 간신히 받으셨다. 덕분에 ..

그리고 후반전 2022.02.07

슬기로운 연금 크레바스 뛰어넘기: '3 + 4 법칙'

독일에는 일시불로 지급되는 퇴직금이라는 것이 없다. 회사가 해고하거나 특별한 상황에서만 위로금(Abfindung)을 주기도 하지만 연금과는 성격이 다르다. 내 나이 또래의 은퇴자들은 67세가 되면 독일의 연금 공단(Deutsche Rentenversicherung)에서 퇴직연금을 받는다. 다행히 남편은 조기 수령이 가능해서 63세부터 연금을 받을 수 있지만, 나는 12년을 기다려야 한다. 11년이 아닌 12년 후에 연금을 받는 데는 내 출생의 비밀이 있다. 각자 직장 생활하면서 연금 공단에 넣어둔 돈이 매달 통장에 찍히기까지 우리는 적잖은 소득 절벽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우리 둘이 받는 퇴직연금으로 노후를 보는 데 어려움은 없다. 문제는 연금 수령까지 소득 없는 기간이다. 일자리를 구하면 되겠지만, ..

그리고 후반전 2022.02.04

우리들의 인천 상륙작전

1992년 가을, 독일의 옛 수도였던 본(Bonn)으로 공부하러 떠났을 때 나는 스물다섯 생일을 며칠 앞두고 있었다.1998년 봄, 본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했을 때 나는 서른이었다.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지 넉 달이 되어갈 즈음에 남편이 청혼했다. 당시 남편은 대학 졸업 후 막 취업을 한 상태였다. 잠시 한국으로 들어온 독일인 남편과 결혼식을 올리고 나는 다시 독일로 떠났다. 이번에는 학생비자가 아닌 결혼 이민 비자를 신청해놓고. 독일 어느 잡지사와의 인터뷰 때 이런 질문을 받았다."독일에서 산 날이 더 많은데, 당신의 고향은 어딥니까?""내 고향은 내가 태어난 곳, 대한민국입니다. 여기서 산 날이 한국보다 많다고 해도 변하지 않는 사실입니다. 독일에는 내 집이 있습니다. 남편과 내가 하루의 일과를 마치..

그리고 후반전 2022.02.03

나의 개발언어 변천사

C, C++, C#, Visual Basic, Java, Groovy, Kotlin, Python, TypeScript, Matlab, Tcl.소프트웨어 개발자였던 내가 업무에 사용했던 개발언어들이다. 가장 애착이 가는 언어는 C++다. 엄마는 아이가 울면 어디가 불편한지 안다고 한다. 엄마가 돼본 적이 없는 나는 그건 알 수 없다. 하지만 C++로 짠 코드가 자빠지면 증상과 발작 정도에 따라 어디를 들여다봐야 하는지 안다. C++가 배우기 어려운 언어라지만, 내가 짠 코드의 저 아래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있게 해 준다. 나는 독일 본(Bonn) 대학교에서 Turbo C++ 플로피 디스켓 3장을 번갈아 껴가면서 C++를 배웠다. C++는 내 첫사랑 개발언어다.첫 직장에서는 C++만 사용했다...

전반전 이야기 2022.02.02

나는 그만 열심히 살기로 했다

2020년 10월 어느 금요일 밤, 나는 부엌에서 정신을 잃었다.쓰러지던 찰나의 기억은 없다. 다급하게 나를 깨우던 남편의 목소리와 뒤통수의 통증만 떠오를 뿐이다. 구급차로 실려 가는 동안 의사가 점심에 뭘 먹었는지 물었지만 나는 답할 수가 없었다. 내가 뭘 먹었더라... 의사는 스트레스가 원인인 듯하다고 했다. 한 달 병가를 내고 집에서 쉬기로 했다. 직장 동료들에게는 미안했지만, 죽다 살아오니 보이는 것이 없었다. 병가로 쉬는 동안 시간을 되감아 봤다. 코로나 염병 때문에 2020년 3월 중순부터 시작한 재택근무는 반년을 넘기고 있었다. 새 제품 출시를 앞두고 나는 밤에 쉽게 잠들지 못했다. 자려고 누웠지만 안 풀리는 문제를 끌어안고 머릿속으로 기나긴 줄의 코드를 쓰며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간신히 잠들..

전반전 이야기 2022.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