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휴, 그 배낭 좀 내려놔. 무겁지도 않아?"
재작년 '막내막내'(아버지는 막내딸의 막둥이를 이렇게 부르신다)의 중학교 졸업식 때 기어이 막냇동생에게 한 소리 들었다. 그런데도 나는 조카의 졸업식 내내 배낭을 등짝에서 떼어내지 않았다. 아이의 졸업사진에는 큼직한 배낭을 멘 '독일 이모'가 보따리장수처럼 배시시 웃고 있겠지만 어쩌겠는가, 나도 어쩔 수가 없는걸.
나는 핸드백을 드는 대신 배낭을 멘다. 방수 잘 되고 등짝 편한 배낭은 내게 구찌고 루이비통이다. 내 배낭은 식당에서 밥 먹을 때면 충성스러운 개처럼 나의 발밑을 지킨다. 화장실 갈 때도 메고 간다. 어디를 가든 나는 배낭을 멘다. 대신 두 손은 자유롭다. 손에 든 것은 쉽게 잃어버릴 수 있으니 모든 소지품을 배낭에 쓸어 담고, 오직 배낭 하나만 챙긴다. 내가 이러는 데는 사연이 있다.
사연 하나: 1992년 초가을 녹번동
독일로 유학을 떠나기 전 아현동의 한 영어 학원에서 6개월 단기 아르바이트를 했다. 마지막 강사료를 받던 날 그동안 모아 온 돈을 모두 인출해서 핸드백에 넣고 부모님이 일하시던 녹번동에서 때 놓친 밥을 먹었다. 돈이 든 핸드백을 아버지의 자동차 앞좌석에 올려둔 채 근처 중국집에서 짜장면 한 그릇을 먹고 나왔을 때는 핸드백이 감쪽같이 사라진 후였다. 당시 넉넉지 못한 집안 사정 때문에 독일에서의 처음 몇 달 치 생활비를 마련하려고 수고한 내 6개월이, 내 돈이 그렇게 흔적도 없이 사라졌다.
사연 둘: 1992년 늦가을 본(Bonn)
독일에 도착해 계절 한 번 바뀌지 않아 나는 지갑을 통째로 잃어버렸다. 전날 일요일에 한인 교회에서 예배를 드리고 교회분들이 풍성하게 차려주신 밥도 맛나게 먹었다. 그리고 월요일 아침을 맞았다. 나는 본 시내와 떨어진 숲 언저리에 있는 여학생 기숙사에서 살았다. 시내로 나가려 가방을 챙기다 그제야 지갑이 없다는 것을 깨달았다. 작은 방 하나를 다 뒤져도 지갑을 찾지 못했다. 한인 교회에서 밥 먹는 날에는 가끔 인근 노숙자들이 와서 음식을 얻어가곤 하는데, 아마도 이 중에 손버릇 나쁜 사람이 있었을 듯하다는 이야기를 나중에 들었다.
한 달 치 교통카드와 현금이 든 지갑을 잃어버렸으니 버스비조차 없었다. 거래 은행도 시내에 있었으니 참으로 난감했다. 일단 시내로 나가 은행 창구에서 돈을 찾아야 했다. 하는 수 없이 기숙사에서 알게 된 한국 여학생에게 사정을 얘기했다.
"이 동네는 외져서 차표 검사 잘 안 해요. 그냥 타셔도 돼요."
그녀는 버스비를 빌려주지 않았다. 독일에서는 버스 기사가 일일이 차표 검사를 하지 않는다. 대신 차표 없이 승차하다 불시검문에 걸리면 꽤 많은 벌금을 내야 한다. 창피함은 덤이고.
당장 수 중에 돈 한 푼 없고 빌릴 곳도 없는 상황에서 무임승차 외에 다른 선택은 없었다. 나는 버스의 맨 뒤 좌석에 앉았다. 아마도 조마조마한 마음 때문이었으리라. 그런데 말이다, 시내 가까운 정류소에서 유니폼을 입은 세 명이 버스표를 검사하려고 차 안으로 들어서는 것이 아닌가! 앞으로 한 명이 타고 뒷문으로 두 명이 타자 버스는 출발했다.
보통은 불시검문에 걸리면 신원 확인 후 벌금 딱지를 받고 상황이 종료되지만, 나는 신원 확인에 응하지 않았다.
"이번 달 교통카드를 샀지만 잃어버렸다. 당장 버스비도 없어 시내에 있는 은행 창구로 돈 찾으러 가는 중이다. 나는 가족 친지 하나 없이 혼자다. 버스비 빌릴 데도 없다"라며 거세게 항변했다. 분명 현행범이었지만 잘못한 것이 없다고 생각했다.
신원 확인을 거부하며 계속 버티자 그들은 버스에서 내려 호위무사처럼 나를 에워싸고 본 중앙역 지하에 있는 사무실로 데려갔다. 잘못한 것이 없으니 벌금을 내지 않겠다는 말만 반복하자 사무실에 있던 사람들이 나를 흘끔거렸다. 한참 실랑이를 벌이던 중에 한 남자가 다가와 말을 걸었다.
"충분히 알겠습니다. 하지만 당신은 무임승차를 했습니다. 벌금은 내셔야 합니다. 이렇게 합시다. 만약 교통카드를 찾게 되면 언제든지 우리에게 오세요. 벌금을 돌려 드리겠습니다."
그제야 나는 벌금 딱지를 손에 쥐고 중앙역 지하에 있는 그 퀴퀴한 곳을 벗어날 수 있었다.
그 후로 나는 꽤 오랫동안 매일 우편함을 열어보았다. 돈만 빼내고 지갑에 든 것들은 그냥 버릴 수도 있으니까. 그러면 누군가 내 주소가 적힌 교통카드를 발견해 우체통에 넣을 수도 있으니까. 그러면 나는 그 카드를 들고 가서 벌금도 돌려받고 내가 무임승차나 하는 형편없는 사람이 아니라고 큰소리칠 테니까. 하지만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나는 버스비를 빌려주지 않던 그 여학생을 원망하지 않는다. 자동차 문이 철사로 쉽게 열려서 내 6개월 임금을 도둑맞았다고도 생각지도 않는다. 순전히 내 탓이었다. 내 부주의로 돈 잃고 마음고생했다. 살면서 이런 경험은 두 번이면 족했다. 그때부터 나는 모든 소지품을 배낭에 쓸어 넣는다. 그리고 내 등짝에서 분리하지 않는다. 안다, 병인 거. 한 해에 돈을 두 번이나 잃어버리고 혈혈단신 타국에서 현행범이 됐던 경험이 이 불치병의 시발이며 내가 핸드백 대신 배낭을 메는 이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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