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에게는 출생의 비밀이 있다.
아버지가 몰래 낳아 데리고 온 딸도 아니고 고 권사님이 내 엄마인 것도 맞다. 나는 주민등록표에 기재된 1968년도 겨울이 아닌 67년 가을에 태어났다. 서울특별시 종로구에서 내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지방에서 막 올라온 노동자였다. 딸내미 출생 신고하러 서울에서 본적지인 익산까지 가기에는 거리도 멀고 겨를도 없었다. 아버지는 당시 익산에 사셨던 할머니께 내 출생신고를 부탁하셨지만, 할머니는 까맣게 잊어버리셨다. 둘째도 손녀라 시큰둥하셨던 걸까? 그래도 좀 너무하셨다.
여러 해가 지나 이 사실을 아신 아버지가 부랴부랴 나를 68년생으로 뒤늦은 출생신고를 하셨다. 이렇게 내 가짜 생년월일이 생겨났다. 초등학교 입학통지서 역시 동사무소 직원에게 돈 주고 간신히 받으셨다. 덕분에 나는 또래 아이들과 같이 학교에 다닐 수 있었다.
1968년도 출생 연도는 내게 가짜다. 하지만 1967년도 출생은 서류상 가짜다. 이 기묘한 불일치를 안고 오십여 년을 살고 있다. 부모님은 내 생일을 음력으로 기억하신다. 나는 양력으로 생일을 쇤다. 회사 동료들은 문서상 생일로 축하해줬다. 일 년에 세 번 맞는 생일이라니......,
나이를 물으면 더 복잡해진다. 67년 9월에 태어났으니 나는 독일 나이로 54세다. 떡국 나이는 56세다. 가짜 생일로 따지면 내 독일 나이는 53세다. 가짜 생일의 떡국 나이는 55세다. 이쯤 되면 나조차 헷갈린다.
'나는 누구인가?'라는 질문은 끊임없이 던지면서 잘못된 생년월일을 왜 진작 바로 잡으려 하지 않았을까. 뒤늦은 깨우침으로 한국에 있는 변호사들에게 생년월일 정정이 가능한지 물었다. 가짜 생년월일에 따르면 바로 아래 동생과의 나이 차이는 5개월도 채 안 된다. 동생과 유전자 검사를 받겠다고 하니, 이건 참고 사항이지 법원 결정에 큰 영향을 미치지 못한단다. 학교 기록물에 가짜 생년월일이 적혀있으면 정정 판결이 쉽지 않다면서. 대학교부터 중학교까지 온라인으로 재적증명서를 확인해보니 모두 가짜 생년월일이 적혀있다. 초등학교 때 서류는 너무 오래돼서 온라인으로 열람할 수 없다. 학교나 관공서에서 열람 신청을 할 수 있다니 아무래도 정정 처리는 한국에서 진행해야겠다.
그런데 힘이 빠진다. 살짝 슬프기도 하다. 사실 생년월일이 바로 잡혀도 산 넘어 산이다. 여권서부터 한국뿐 아니라 독일의 모든 관공서에 정정 신청을 내야 한다. 엄두가 나지 않을 정도다. 그런데도 나는 생년월일을 바로 잡고 싶다. 왜냐면 가짜니까.
법원의 정정 판결이 녹록하지 않다고 미리 포기하고 싶지 않다. 노력해도 내가 어쩔 수 없는 것은 받아들이면 된다. 하지만 아무것도 하지 않은 채 68년 겨울에 태어난 나로 살고 싶지 않다. 몇 살이냐고 묻는 말에 어떤 답을 해야 할지 더는 고민하고 싶지 않다.

'그리고 후반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 나는 재밌게 살기로 했다 (0) | 2022.06.08 |
|---|---|
| 중국을 사랑하는 남자 (0) | 2022.03.10 |
| 지도자의 중요성 (0) | 2022.02.15 |
| 슬기로운 연금 크레바스 뛰어넘기: '3 + 4 법칙' (0) | 2022.02.04 |
| 우리들의 인천 상륙작전 (0) | 2022.02.03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