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반전 이야기 20

여전히 낯설다

오랜 세월 독일에서 살고 있어도 도저히 적응 안 되는 몇 가지가 있다. 그중 하나가 사우나다. 독일의 남녀혼탕 사우나에 대한 경험담을 적은 글들이 적잖지만, 내 경험은 최소 이불 킥 30년짜리다. 신혼 초에 살았던 마을의 옆 동네에는 야외 온천탕과 사우나를 갖춘 온천이 있었다. 눈 내리던 겨울에 남편과 함께 처음 그 온천에 갔다. 송이송이 눈 떨어지는 야외 온천만 즐기면 좋았을걸... 뜨겁고 건조한 공기로 땀을 뺀 후 야외에 설치된 얼음통에 몸을 담그면 환상적이라는 남편의 꼬드김에, 다 안 벗고 타월로 가리면 된다는 말에 나는 사우나를 해보기로 했다. 게다가 나는 고도 근시라서 안경 없이는 보이는 게 없다. 사우나 전용공간으로 들어서는 순간 나는 식겁했다. 입구에서부터 독일식 뽕짝 가락이 요란하게 울려 ..

전반전 이야기 2022.06.27

달걀과 바나나

남편은 달걀, 나는 바나나다. 생김새로 따지자면 길쭉한 남편을 바나나로, 작고 동글한 나를 달걀로 비유하는 게 맞다. 달걀과 바나나로 외모를 묘사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고방식을 표현하려 한다. 노란 껍질을 벗기면 속이 하얀 바나나처럼 생김새는 동양인이면서 독일인처럼 사고하는 나는 바나나에, 겉은 흰 달걀처럼 뽀얀 독일인이지만 속은 노란 알처럼 동양적 사고를 하는 남편은 달걀에 빗댄 것이다. 독일에서 산 날이 한국보다 많아지면서 나는 점점 바나나가 되었고, 한국 여자랑 사는 세월이 더해감에 따라 남편은 달걀이 될 수밖에 없었으리라.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가 부부로 사는 것이 우주의 온갖 기운을 받아도 쉽지 않은 터에 다른 문화와 사고 환경에서 자란 우리는 오죽했으랴. 각자 서로에게 닿기..

전반전 이야기 2022.06.09

독일 회사의 사원 평가

대부분의 독일 회사는 연말이 되면 각 개인의 실적에 대한 평가 회의(Mitarbeiterjahresgespräch)를 실시한다. 평가 회의는 상사와 1:1로 진행된다. 상사는 자기 상사와 또 평가 회의를 한다. 이러한 피라미드식 사원 평가가 1년에 한 번 실시된다. 회의는 12월 초에 시작되어 보통 3월 말이 돼서야 마무리된다. 회사마다 자체 제작한 평가서를 제공한다. 부하직원과 상사 모두 회의 전에 평가서를 작성한 후 이를 토대로 한 해 실적에 대한 평가, 능률을 올리기 위한 개선점, 내년 목표 설정, 그리고 연봉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 나의 두 번째 직장 A에서의 사원 평가를 소개하겠다.A 회사는 2,000여 명이 일하는 IT 회사다. 사원 평가서는 크게 협업, 업무 조직, 업무의 질, 업무량, ..

전반전 이야기 2022.05.02

독일 한글학교에서 글과 역사를 가르치다

나는 1994년부터 3년 6개월 정도 독일 본(Bonn)에 있는 한글학교에서 교사로 일했다. 다섯 학급에 학생 수는 50여 명 남짓의 한글학교는 독일 학교를 빌려 학기 중 토요일에만 운영되었다. 수업은 세 시간 동안 진행됐다. 본 대사관 분관에서 제공하는 ≪재외 한국 동포들을 위한 한국어 교재≫ 또는 국내의 초등학교 국어 교과서를 교재로 사용했다. 학생들은 교포 2세, 한독가정 아이들, 그리고 유학생 자녀들이었다. 대부분의 교포 2세들은 고학년에 속했고 한독가정과 유학생 자녀들은 유치원생 혹은 저학년생이었다. 한글 자모부터 가르쳐야 하는 '한독가정반'이 내게 맡겨졌다. 아이들이 한국어를 거의 알아듣지 못하더라도 되도록 한국어로 수업했고, 설명이 필요한 부분만 독일어로 말했다. 수업 중에 가끔 아이들에게 ..

전반전 이야기 2022.04.26

기억에 남는 중국 여행

요즘 도나우(Donau) 동네는 터져 나오는 봄꽃들로 알록달록하다. 서재 창가 너머로 보이는 하얀 자작나무 줄기에는 머리를 땋아놓은 듯한 연한 꽃들이 길게 매달려 있다. 눈길이 머무는 봄 풍경이지만 나는 오싹한다. 자작나무 꽃가루 알레르기 때문이다. 봄볕이 좋아 잠시 외출이라도 하면 눈이 따끔거리고 목 안이 붓는다. 눈 주위가 벌게지고 불편해지는 이맘때가 되면, 나는 그해의 중국 여행을 떠올린다. 2007년 3월 초 남편과 함께 상하이(上海)와 핑야오(平遥)를 여행했다. 핑야오는 명·청나라 때 금융 중심지였다. 베이징(北京)에서 비행기를 타고 타이위안(太原)에 도착해 하룻밤을 묵었다. 다음날 관광차로 핑야오로 떠날 예정이었다. 비록 하룻밤 거쳐 가는 도시지만 잠시 둘러보려고 호텔을 나서니 안개가 낀 듯 ..

전반전 이야기 2022.04.21

찬란한 유산

24년째 쓰는 가계부는 우리 집 살림의 빅데이터다. 이 빅데이터로 여러 가지 통계를 낼 수 있다. 성경에 "물질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라고 한다. 지난 세월의 지출을 보면 남편과 나의 마음이 어디에 가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주택구입 같은 일회적인 지출과 투자용 저축을 제외하고, 23년간 꾸준히 지출된 항목 중에서 순위를 매겨봤다. 2022년 올해의 지출 비용은 포함하지 않았다.1위는 주(住)다. 집 없이 산 세월도 있고 내 집에서 산 날도 있다. 월세든 관리비든 독일에서 집과 관련된 비용이 높다. 놀랍지 않은 결과다. 2위는 선교 및 구제다. 복음을 전하는 일과 곤경에 빠진 사람들을 위해 내어 준 돈이 입는 데(衣) 쓴 것보다 4배가 많고 먹는 데(食) 지출한 돈보다 2배가 많다. 1위와 단..

전반전 이야기 2022.04.18

나는 50대 아줌마 개발자였다

나는 독일에서 25여 년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일했다. 30대부터 50대를 개발자로 살았다. 치열했으나 뿌듯했고 재밌었으나 힘들었던 때는 흰머리가 꽤 늘어난 50대였다. 50대 개발자로 일했던 마지막 회사는 독일의 노동청과 복지부에서 사용하는 소프트웨어를 만드는 IT 회사였다. 첫 부서에서 나의 업무는 기존 제품의 유지관리와 보수였다. 내 능력의 60~70%만 투입하면 해결되는 업무였다. 나 또한 굳이 내 능력의 100%를 꽉 채우려고 일 욕심을 부리지 않았다. 퇴근길에 장을 봐 저녁밥 짓는 데 공을 들이고, 헬스장에 등록해 운동하며, 빛의 속도로 쏟아지는 IT 기술을 짬짬이 공부할 수 있는 시간적 여유가 생겼다. '이게 사는 거지, 뭐'라고 스스로 다독였지만 속은 시끄러웠다. 업무는 지루했고 개발자로 일..

전반전 이야기 2022.04.12

나의 스크럼 이야기

마지막 일터에서 나는 주 4일(에 준하는) 근무를 했다. 근로계약서에는 주당 5일 40시간 근무와 일 년 30일 유급휴가가 명시되어 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스크럼(Scrum) 방식에 따라 팀 과제를 수행했고 금요일에는 부서 활동을 했으니 업무로만 따진다면 완벽한 주 5일 근무는 아니었다. 금요일에는 팀 과제를 수행하지 않고 서로 필요한 정보를 교환하거나 주제를 정해 토론하는 식의 소규모 워크숍을 진행했다. 참석 여부는 각자가 결정했다. 부서 활동을 하는 금요일을 오픈 프라이데이(Open Friday)라고 불렀다.마당에 꽃 가꾸고 그림 그리는 나의 언니가 스크럼이 뭐냐고 물어보면 이렇게 설명할까 한다."언니가 스크럼의 역사, 고안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없을 테니 이건 패스~. 스크럼은 팀이 과제를..

전반전 이야기 2022.04.04

서화의 펭귄 인형

외국에서 오래 살다 보니 재주 하나가 늘었다. 내 손이 저울이 되었다. 처음 한국에 오갈 때는 일일이 가방 무게를 쟀지만 이제는 쓱 들어보면 견적이 나온다. 매번 독일로 가져올 짐이 그리도 많은지 내 손저울은 아슬아슬하다. 나는 체크인할 때 무게 초과로 짐 빼는 것이 끔찍이도 싫다. 등 뒤로 줄 서 있는 낯선 사람들 앞에서 지극히 사적인 영역을 열어젖힐 때면 투명망토라도 뒤집어쓰고 싶다. 더 질색인 것은 계획해서 꾸린 가방에서 계획 없이 뭔가를 꺼내야 한다는 점이다. 무게 초과한 가방에서 무엇을 빼내야 할지에 대한 순간적 판단은 '계획의 여왕'인 나에게는 너무나 무리한 요구다. 한국에는 아기자기하고 예쁜 것들이 참 많다. 다 가져오고 싶지만 어지간한 것들은 독일에서 산다. 우리 집에 예쁘고 앙증맞은 것 ..

전반전 이야기 2022.03.23

독일 사람들은 정말 쌀쌀맞을까?

독일에 사는 외국인들에게 독일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쌀쌀맞다', '차갑다'라고 말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할까? 만약 내가 '그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이 선입견을 깨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을지도 모르겠다. 에피소드 하나아주 오래된 이야기다. 따사로운 햇살이 비취는 5월 중순 어느 토요일, 누군가의 갑작스러운 제안으로 친구들과 당일치기로 라인(Rhein)강을 따라 자전거 여행을 했다. 계획 없이 떠나는 여행이 주는 설렘 가득, 우리는 제각기 끌고 나온 고물 자전거에 올라탔다. 라인 강변은 조깅하거나 산책하는 사람들, 그리고 우리처럼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로 무척이나 붐볐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신나게 자전거를 타고 있는데 일행 중 한 명의 자전거에 문제가 생겼다. 바퀴가 터져 ..

전반전 이야기 2022.03.19

팀, 플러스 섬 게임

내가 마지막으로 일했던 팀에는 모든 DISC 성격 유형이 존재했다. 주도형(Dominance), 사교형(Influence), 안정형(Steadiness), 그리고 신중형(Conscientiousness). 나는 신중형이다. 관리자는 한 팀에 DISC 유형이 골고루 있으면 이상적인 팀 구성으로 여긴다. 서로 보완하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퇴사한 회사에서, 한 번은 팀이 크게 삐걱댄 적이 있었다. 사교형인 동료가 그해 목표로 주도형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자신은 주도형과 사교형의 경계에 있는데 주도형으로 넘어가겠다면서. 한번 말 섞기 시작하면 언제 끝날지 모르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부서의 최신 정보는 꿰고 있는 동네 통장 같은 친구였다. 게다가 어찌나 말솜씨가 좋은지 논쟁이 붙으면 당해낼..

전반전 이야기 2022.03.16

칼린 이야기

시아버지 칼린이 들려준 이야기다."마을 한가운데 있던 성당 첨탑에서 12시가 되면 종소리가 울려 퍼져. '정오구나. 점심 먹을 때가 됐네.'라고 생각했지." 칼린은 독일 나치 정권 때 소년병으로 징집되었다. 독일이 패전한 후 프랑스의 포로수용소에 갇혀 지냈는데 늘 배가 고팠다. 전쟁포로로 농가에서 강제 노역을 했는데, 오히려 그게 더 나았다. 일은 고되어도 배는 곯지 않았으니까. 뼈가 바스러지게 일하고 있으면 뎅그렁~ 뎅그렁~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계는커녕 변변한 밭일하는 장비도 없이 일하던 칼린에게 종소리는 12시가 되었으니 곧 밥 먹을 수 있음을 의미했다. 노역하던 농가에서 점심밥만큼은 넉넉하게 줬다. 전쟁을 겪고 포로 때의 배고픔 때문이었을까? 칼린은 밥을 남기지 않았다. 식당에서 남은 음식은 ..

전반전 이야기 2022.03.11

아무튼, 합격

본(Bonn) 대학교에서 공부할 때의 일이다. 한국에서 고등학교는 문과였고, 대학에서는 독일어를 전공한 내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부전공으로 컴퓨터공학을 공부하기로 했다. 훗날 내 박사논문 지도교수인 렌더스(Prof. W. Lenders) 교수가 논문 지도를 받고 싶으면 실력부터 갖춰 오라고 했으니 나는 기초부터 제대로 공부할 셈이었다. 첫 학기에는 몇몇 전공 수업을 들었지만, 두 번째 학기에는 오로지 부전공 딱 한 과목만 수강 신청했다. . 컴퓨터공학을 전공으로 공부하든, 부전공으로 택했든 꼭 통과해야 하는 과목이었다. 이 과목을 이수하지 못하면 부전공을 바꾸거나 대학을 옮겨야 했다. 계단식 강의실은 500명은 족히 돼 보이는 앳된 얼굴의 새내기들로 늘 도떼기시장 같았다. 교수는 수업 내내 여섯 면의..

전반전 이야기 2022.03.04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음이라'

코로나 염병이 창궐하기 몇 달 전에 여권이 만료되었다. 여권을 발급받은 지 그새 10년이 또 지난 것이다. 본(Bonn) 대사관 분관에서 새로 신청한 여권을 우편으로 받자마자 영주권을 갱신하러 아침 일찍 관할 외국인 관청(Ausländerbehörde)에 갔다. 빨리 일 처리하고 출근하려던 바람은 해당 창구 앞에 길게 늘어선 대기 줄에 물거품이 됐다. 대부분이 시리아에서 온 아랍계 외국인들이었다. '난민의 어머니'라 불리는 독일 전 수상 메르켈(Dr. A. D. Merkel)이 국경을 열어주어 내가 살던 동네에도 꽤 많은 난민이 살고 있었다.대기표도 없이 길게 늘어진 줄 끝에 자리를 잡자마자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Der Nächste!(다음 사람!)"나는 귀를 의심했다.'여기가 군대야? 수용소야..

전반전 이야기 2022.02.28

걸려 넘어져라!

독일의 한적한 마을이든, 복잡한 시내든 걷다 보면 길바닥에 10cm 크기의 정사각형 황동판이 박혀 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그 안에는 이름과 태어나고 죽은 날짜가 새겨져 있다. 사망 날짜는 독일 나치 정권이 집권하던 1933년에서 1945년 사이다. Stolpersteine(걸림돌), "걸려 넘어지는 돌"이라는 뜻을 지닌 황동판은 나치 정권의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그들이 살았던 집이나 일터 앞 길바닥에 박혀있다. 아래 여섯 개의 걸림돌들을 들여다보니 모두 성이 같다. 가족인 듯하다. 맨 오른쪽에는 이렇게 쓰여있다."1906년에 태어나 1942년 아우슈비츠(Auschwitz)로 끌려가 살해당한 율리우스 함부르거(Julius Hamburger)가 여기 살았다." 고개를 떨구고 걷다가 무심코 이런 황동..

전반전 이야기 2022.02.26

Team Autonomy

내가 퇴사했던 부서에는 부장이 없었다. 팀에 팀장도 없었다. 주임, 대리, 과장 같은 직급 역시 없었다. 대신 팀 안에서의 역할이 있었다. '품질 챔피언(Quality Champion)', '보안 영웅(Security Hero)', '설계 도사(Architecture Master)', ‘디자인 천재(UX‐Genius)’처럼 우스꽝스러운 이름이 붙은 역할을 팀원들이 상의하여 나눠 가졌다. 나는 품질 챔피언이었다. 이전 회사에서 소프트웨어 설계자 역할을 했던지라 설계 도사를 맡고 싶었지만, 내가 부서 이동으로 팀에 왔을 때는 품질 챔피언 역할만 남아있었다. 까짓~ 하지 뭐, 하고 맡은 역할이었는데 상당히 매력적이고 재밌었다. 팀 안에서 각 개발자는 개발 과제와 역할이라는 두 가지 임무를 수행했다. 예를 들어..

전반전 이야기 2022.02.22

내가 배낭을 메는 이유

"어휴, 그 배낭 좀 내려놔. 무겁지도 않아?"재작년 '막내막내'(아버지는 막내딸의 막둥이를 이렇게 부르신다)의 중학교 졸업식 때 기어이 막냇동생에게 한 소리 들었다. 그런데도 나는 조카의 졸업식 내내 배낭을 등짝에서 떼어내지 않았다. 아이의 졸업사진에는 큼직한 배낭을 멘 '독일 이모'가 보따리장수처럼 배시시 웃고 있겠지만 어쩌겠는가, 나도 어쩔 수가 없는걸. 나는 핸드백을 드는 대신 배낭을 멘다. 방수 잘 되고 등짝 편한 배낭은 내게 구찌고 루이비통이다. 내 배낭은 식당에서 밥 먹을 때면 충성스러운 개처럼 나의 발밑을 지킨다. 화장실 갈 때도 메고 간다. 어디를 가든 나는 배낭을 멘다. 대신 두 손은 자유롭다. 손에 든 것은 쉽게 잃어버릴 수 있으니 모든 소지품을 배낭에 쓸어 담고, 오직 배낭 하나만 ..

전반전 이야기 2022.02.21

박사학위를 하다

1998년 4월, 나는 독일 본(Bonn) 대학교에서 전산언어학으로 박사학위를 했다.나는 '박사학위를 받았다.'라고 하지 않는다. 누가 내게 거저 줘서 받은 것이 아니니까.'공부를 마쳤다.'라고도 하지 않는다. 공부는 끝이 없으니까. 대략 설명하자면, 전산언어학은 사람의 글(Text)과 말(Speech)을 컴퓨터가 이해하여 출력값을 다시 자연언어로 변환하는 것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잘 알려진 구글의 번역기, 애플의 Siri 등이 이 학문의 대표적인 결과물이다. 자연언어 처리(Natural Language Processing)는 인공지능의 핵심 기능 중 하나로 현재는 컴퓨터공학의 세부 분야에 속하지만, 내가 공부하던 1990년대 본 대학교에서는 하나의 독립된 학과에서 다뤄졌다. 나는 전산언어학을 공부하기..

전반전 이야기 2022.02.09

나의 개발언어 변천사

C, C++, C#, Visual Basic, Java, Groovy, Kotlin, Python, TypeScript, Matlab, Tcl.소프트웨어 개발자였던 내가 업무에 사용했던 개발언어들이다. 가장 애착이 가는 언어는 C++다. 엄마는 아이가 울면 어디가 불편한지 안다고 한다. 엄마가 돼본 적이 없는 나는 그건 알 수 없다. 하지만 C++로 짠 코드가 자빠지면 증상과 발작 정도에 따라 어디를 들여다봐야 하는지 안다. C++가 배우기 어려운 언어라지만, 내가 짠 코드의 저 아래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있게 해 준다. 나는 독일 본(Bonn) 대학교에서 Turbo C++ 플로피 디스켓 3장을 번갈아 껴가면서 C++를 배웠다. C++는 내 첫사랑 개발언어다.첫 직장에서는 C++만 사용했다...

전반전 이야기 2022.02.02

나는 그만 열심히 살기로 했다

2020년 10월 어느 금요일 밤, 나는 부엌에서 정신을 잃었다.쓰러지던 찰나의 기억은 없다. 다급하게 나를 깨우던 남편의 목소리와 뒤통수의 통증만 떠오를 뿐이다. 구급차로 실려 가는 동안 의사가 점심에 뭘 먹었는지 물었지만 나는 답할 수가 없었다. 내가 뭘 먹었더라... 의사는 스트레스가 원인인 듯하다고 했다. 한 달 병가를 내고 집에서 쉬기로 했다. 직장 동료들에게는 미안했지만, 죽다 살아오니 보이는 것이 없었다. 병가로 쉬는 동안 시간을 되감아 봤다. 코로나 염병 때문에 2020년 3월 중순부터 시작한 재택근무는 반년을 넘기고 있었다. 새 제품 출시를 앞두고 나는 밤에 쉽게 잠들지 못했다. 자려고 누웠지만 안 풀리는 문제를 끌어안고 머릿속으로 기나긴 줄의 코드를 쓰며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간신히 잠들..

전반전 이야기 2022.01.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