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반전 이야기

달걀과 바나나

선한 부자-이현주 2022. 6. 9. 19:04

남편은 달걀, 나는 바나나다.

생김새로 따지자면 길쭉한 남편을 바나나로, 작고 동글한 나를 달걀로 비유하는 게 맞다. 달걀과 바나나로 외모를 묘사하려는 것이 아니라 사고방식을 표현하려 한다. 노란 껍질을 벗기면 속이 하얀 바나나처럼 생김새는 동양인이면서 독일인처럼 사고하는 나는 바나나에, 겉은 흰 달걀처럼 뽀얀 독일인이지만 속은 노란 알처럼 동양적 사고를 하는 남편은 달걀에 빗댄 것이다.

 

독일에서 산 날이 한국보다 많아지면서 나는 점점 바나나가 되었고, 한국 여자랑 사는 세월이 더해감에 따라 남편은 달걀이 될 수밖에 없었으리라. '화성에서 온' 남자와 '금성에서 온' 여자가 부부로 사는 것이 우주의 온갖 기운을 받아도 쉽지 않은 터에 다른 문화와 사고 환경에서 자란 우리는 오죽했으랴. 각자 서로에게 닿기 위해 죽을힘을 다해 달리다 보니 남편은 어느새 나를 지나쳐 달걀이 되었고, 나 역시 중간 지점보다 더 나아가 바나나가 되어버렸다. 독일인 같은 한국 아내, 한국인 같은 독일 남편이다.

 

일상에 스며든 우리의 변화는 한국에 있는 부모 형제들이 먼저 알아챘다. 2~3년에 한 번꼴로 한국에 가는 내가 다른 형제들보다 부모님의 연로함을 더 체감하는 것처럼.

 

한 번은 엄마와 언니랑 안동으로 여행을 떠났다. 돌아오는 길에 시골 식당에서 점심을 먹었다. 식사 후 우리 셋의 밥값을 치르자 주인아줌마가 "저 채솟값은요?"라고 물었다. 아줌마는 엄마와 언니가 식당 앞에 소복이 쌓아놓은 채소를 가리켰다. 우리가 밥을 먹은 곳은 식당과 채소가게를 겸한 곳이었는데, 마침 추석이 이틀 후라 두 양반이 추석에 먹을 채소와 나물을 그야말로 산더미처럼 쌓아둔 거였다.

"저건 제가 계산할 게 아닌데요."

순간 아줌마의 당황한 두 눈이 엄마와 마주쳤다.

"이해하세요, 외국인이에요."

엄마의 한숨 섞인 대꾸에 언니는 박장대소했고, 아줌마는 당최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는 표정이었다.

"딸인데 독일에서 오래 살다 보니 독일 사람이 다 돼버렸어요."

엄마의 친절한 설명에 아줌마도 웃음을 터뜨렸지만, 나는 그 상황이 전혀 우습지 않았다. 독일로 돌아와 남편에게 들려주자, 한숨을 포옥 내쉰 남편이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말했다.

"아이고, 우리 외국인~"

 

또 한 번은 남편과 같이 한국에 갔었을 때의 일이다. 부모님 집에 모두 모여 저녁에 한바탕 신나게 윷놀이를 했다. 윷놀이 후에는 역시 치맥이지!

"치킨 먹을 사람? 내가 쏠게~"

나의 발랄한 제의에, 거하게 저녁을 먹은 식구들은 시큰둥할 뿐이었다. 나는 접수된 분량만큼 치킨을 주문했다. 배달된 치킨 냄새가 집안을 가득 채우자, 피곤하다며 자러 들어가신 엄마 아버지를 비롯해 시큰둥하던 식구들이 펴놓은 밥상 주위로 주섬주섬 몰려 앉았다.

'이러시면 곤란합니다~ 안 먹겠다던 분들은 빠져주세요.'라고 쫓을 수도 없는 노릇이었다. 잠옷 차림의 아버지가 상 위에 펼쳐놓은 턱없이 부족한 치킨을 보고 말씀하셨다.

"고작 이거 주문했어? 딸아, 너희 집에서 어디 밥 한 끼 먹고 오겠니?"

"먹을 사람 손들라고 했잖아요, 안 드신다고 하셨으면서..."

혀를 끌끌 차며 부족한 치킨을 자손들과 나눠 드시는 아버지와 한마디씩 거들며 나를 놀리는 형제들을 보며 남편이 귓속말을 했다.

"내일 또 시키자. 그땐 물어보지 말고 그냥 다 시켜, 알았지?"

'도대체 내가 뭘 잘못한 거지?'

 

2015년 출간된 Yaung Liu작가의 <East Meets West> 책은 동서양의 사고 차이를 간단한 삽화들로 잘 묘사한다. 의사표현의 차이에 대한 아래의 삽화는 절로 고개를 끄덕이게 만든다. 파란색은 서양을, 빨간색은 동양을 나타낸다. 

 

Yaung Liu 작가의 East Meets West, 2007 / 의사표현

 

직장이든 교회든, 내가 독일에서 30년 동안 만난 독일인들의 의사 표현은 직설적이다. 세련됐냐 덜 세련됐느냐의 차이일 뿐 독일인은 얘든 어른이든 자신의 의견을 돌려 말하지 않는다. 직설적인 의사표현에 익숙하지 않았던 나 역시 직장생활 초반에 적잖은 어려움을 겪었다. 동료들은 내가 에둘러 말하는 것을 이해하지 못했고, 나는 못 알아듣는 동료들이 답답했다. 게다가 직설적으로 훅 들어오는 그들의 표현에 나가떨어지곤 했었다. 독일어라는 공통 언어로 대화하지만, 소통이 힘들었다. 남편은 중국에서 3년 정도 유학을 했던 터라 행간의 의미를 파악하는 능력이 내 동료들보다는 나았어도 동서양의 상이한 의사 표현은 다툼의 빌미가 되곤 했다. 이제는 굳이 말하지 않아도 눈빛만으로도 이심전심이지만.

 

한국인은 실타래처럼 얽힌 말들의 의미를 파악하는 능력이 뛰어남이 틀림없다. 일상에서 자신도 모르게 이 능력을 익히고 훈련할 테니 말이다. 직설적으로 자신의 의견을 드러내는 환경에서 자란 독일 사람들과 원활한 소통을 하기 위해 나는 한국인의 초능력을 버리고 그들에게 맞출 수밖에 없었다. 이제는 내게도 직설적 의사 표현 방식이 편하다. 에둘러 말하는 대화법이 답답하게 느껴진다.

 

간혹 나의 직설적 표현에 한국에 있는 가족들이 당혹해한다. 과거 독일에서의 나를 보는 듯하다. 한국에서 후반생을 같이 보낼 가족들, 벗들, 그리고 이웃들과 원활한 소통을 하려면 내 안에 이 초능력을 되살려야 한다. 수년간 내 마음 어딘가에 처박아 놓았던 실타래 푸는 능력을 찾아내 쌓인 먼지 털어내고 햇볕에 뽀송하게 말려야 한다. 에둘러 말하며 상대의 말에 귀를 기울여야 한다.

 

하지만 쉽지 않은 다짐이다. 그새 나는 독일에서 잘 익은 바나나가 되어 일일이 따지고 옳고 그름을 직설적으로 말하는 데 익숙하다. 살짝 걱정이 앞서지만, 노란 달걀 알처럼 나보다 더 한국적인 남편이 있지 않은가! 한국에서 가족들과 외식할 때 화장실 가는 척하며 모두의 밥값을 계산하던 남편의 '한국스러움'에 은근슬쩍 묻어가 볼까 한다.

 

ⓒ 2022. 이현주, 2013년 한국에 갔을 때 어느 미술 전시장에서 마주친 조각. 내가 남편을 바라볼 때의, 딱 그 모습이다. 나를 내려다보는 남편의 미소와 많이 닮았다 / 서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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