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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리고 후반전11

오 서방의 알록달록한 한국살이 ​대한민국에 외국인 300만 명이 살고 있다. (머니투데이, ‘한국 체류 외국인 인천 인구에 육박’ 기사 참조)​이 중 한 명이 나의 독일인 남편, '오 서방'이다. 결혼 25년 차가 되던 2023년 가을, 남편과 나는 독일 생활을 정리하고 한국으로 왔다. 나는 재외국민에서 내국인으로, 남편은 외국인등록증을 받아 1년, 2년씩 F6 비자를 연장하며 살고 있다. 올가을이면 어느덧 한국 거주 만 3년이 된다. 남편은 한국에 오자마자 정부가 지원하는 사회통합프로그램을 통해 한국 말과 문화를 배우더니, 올봄에는 마지막 5단계까지 마쳤다. 거의 무료로 배웠다. 이외에도 글로벌센터, 주민센터 등 한국어를 무료로 배울 기회는 많다. 참 고마운 대한민국이다.​나의 게으른 실수에 “소 잃고 외양간 고친다”는 속담을 던지.. 2026. 9. 5.
광복절 단상: 강물도 숨기지 못한 과거 먼저, 대한독립 만세! 아침밥을 먹다가 문득 깨달았다. 맞아, 오늘이 광복절이지. 부랴부랴 태극기를 찾아 들고 두 손 번쩍 들어 '대한독립 만세, 대한민국 만세'를 홀로 외친 뒤 까만 철대문 위에 걸어놓았다. 외국에서 오래 살다 돌아오니 삼일절과 광복절에 태극기 다는 기쁨이 크다. 대한 독립을 위해 스러져 가신 선조들께 감사한 마음도 듬뿍이다.며칠 전 2026년 8월 13일 자 독일 공영방송 tagesschau 기사를 흥미롭게 읽었다. 역대급 폭염으로 라인강의 수위가 낮아지면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군의 불발탄과 무기가 대량 발견된다는 내용이었다. 폭발물 처리로 인근 주민들이 대피하고 라인강 운항마저 중단된다고 한다. 이 가뭄에 침몰한 보물선이라도 발견되면 좋으련만, 두 번의 세계대전을 치른 전.. 2026. 8. 15.
금지를 금하노라! 대한민국에서 집 밖으로 나가면 편히 눈 둘 데가 없다. 길을 걷다 보면 시선이 닿는 곳마다 수많은 금지 문구가 눈을 찔러댄다.하지 마라, 금지한다. 온통 금지 투성이다. 심지어 산 정상에 올라도 눈앞에 펼쳐진 경치보다 붉은 글씨로 쓰인 금지 사항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접근 금지, 야호 소리 지르기 금지, 쓰레기 투기 금지, 이런 금지 저런 금지... 30여 년 독일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인천상륙작전'을 무사히 마친 첫해만 해도, 이래저래 금한다는 말들은 들기름 좀 챙겨가라는 엄마의 잔소리 정도로 여겼다. 지하철 계단마다 촘촘히 붙어 있는 우측통행 문구나 붐비는 환승 구역의 자리 이동에 대한 안내문도 출퇴근 혼잡을 피하기 위한 안전조치려니 했다. 하지만 목적지에 닿을 때까지 반복되는 안내 방송을 견디는.. 2026. 5. 7.
최고의 인생 "헛되고 헛되다."솔로몬은 이 말을 전도서에서 무한 반복한다.도대체 뭐가 그렇게 헛되다는 걸까? 그는 전도서에 자신의 업적을 조목조목 나열한다. 하지만 잔뜩 부풀려놓은 풍선에 쉬익~ 바람 빠지듯, 모든 업적과 성취가 헛되다고 한다. 지혜를 얻으려고 애썼고, 누구보다도 지혜롭던 솔로몬은 지혜가 많으면 번뇌가 많고, 아는 게 많으면 근심이 많다며 김 빠지는 소리를 한다. 지혜도, 업적도 다 헛되단다.모든 것이 헛된 나머지 "자, 너 스스로 낙을 누리고 즐겁게 살아봐" (전도서 2:1) 라고 했지만, 이조차 어리석고 헛되다 한다. 주야장천 헛되다며 읊조리던 그가 전도서 3장 후반부에 이런 말을 한다."이제 나는 깨닫는다. 기쁘게 사는 것, 살면서 좋은 일을 하는 것, 사람에게 이보다 더 좋은 것이 무엇이랴" .. 2024. 7. 15.
우리들의 놀이터 "우리, 놀이터 만들래?"양평에서 꽃 심고 그림 그리며 사는 언니의 전화다. 형제들이 모두 은퇴하면 같이 놀 공간을 만들어보자 한다. 언니가 말하는 놀이터는 사무실이나 방 한 칸 개념이 아니라, 집 딸린 땅이다. 땅을 사서 집을 짓기에는 건축자재값이 많이 올랐으니 큰 텃밭이 있는 시골집을 사서 우리들의 놀이 공간으로 개조해 놀자고 한다. 솔깃한 제안이다. 형제들이 놀이터에서 같이 놀 마음이 있다면, 형부의 정년퇴직 후 우리들 곁으로 이사 오겠단다. 부모님과 막냇동생네가 이미 살고 있고, 내년이면 우리 부부도 들어가 살 파주로 말이다. 우리들의 놀이터는 각자의 거주지에서 이동 거리 15~20분 정도의 파주 외곽에 있는 땅으로 좁혀진다. 이보다 멀면 매일 가서 놀고픈 마음이 사라질 수도 있다. 놀이터는 놀이.. 2022. 11. 2.
나는 재밌게 살기로 했다 나는 아직 '은퇴 후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답을 얻지 못했다. 한 문장을 세 번 정독해도 이해가 안 되면 나의 이해력이 부족한 게 아니다. 둘 중 하나다. 저자도 모르거나, 읽는 이의 입장에서 쓰지 않았거나. 반년이 지나도록 답을 얻지 못한 질문이라면 역시 둘 중 하나다. 답이 없거나, 답하는 자의 입장을 고려하지 않은 뭉뚱그린 질문이거나. 이제 질문을 다시 들여다볼 때이다. '은퇴 후 무엇을 할 것인가?'라는 질문을 더 쪼개 보자.은퇴 후 나는1. 무엇을 할 수 있을까?2. 무엇을 하면 좋을까?3. 무엇을 하고 싶은가?하나의 물음에 세 질문이 숨어있다. 이러니 답을 못 찾은 것이다. 첫 번째 질문은 내가 잘하는 것을 은퇴 후에 하는 경우다. 내가 잘하는 것? 많다. 분석, 계획, 끈기, 추진.. 2022. 6. 8.
중국을 사랑하는 남자 중국을 사랑하는 남자, 내 남편이다.오죽하면 '내가 좋아, 중국이 좋아?'하고 물어볼 정도다. 어찌나 기묘하게 빠져나가는지 아직 답을 듣지 못했다. 우리는 본(Bonn) 대학교 학생 식당에서 처음 만났다. 남편은 90년도 초에 중국에서 3년 유학했고, 이후 본 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했다. 지금은 출판사에서 일하지만 직업경력 8할은 중국 무역과 금융에 관련된 일이었다. 남편이 무역 회사에 다닐 때 1년에 서너 번은 중국으로 출장을 갔다. 남편의 일정이 끝날 즈음이면 나도 중국으로 날아가 둘이서 여행을 하곤 했다. 한 번은, 남편의 거래처에서 내가 중국에 와 있는 것을 알고 저녁 식사에 초대한 적이 있었다. 식사 내내 대여섯 명의 거래처 직원들과 능숙하게 중국어로 대화하는 남편이 참 멋져 보였다. 똑똑한 아.. 2022. 3. 10.
지도자의 중요성 나의 시아버지 칼린은 2차 세계 대전 때 나치 독일군이었다.아내를 위해 부엌 창 앞에 빽빽이 장미를 심고 여기저기 후원을 아끼지 않는 평범한 할아버지 칼린이 영화에서 봤던, 피 한 방울도 나지 않을 듯한 나치 군인이었다니! 나는 칼린이 나치 정권 때 군인으로 어디에서 뭘 하고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조심스레 묻자 칼린은 어제 일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1925년 12월생인 그는 1943년 열일곱의 나이로 나치 정권에 징집됐다. 말 그대로 징집은 그의 선택 사항이 아니었다. 어린 나이에 전쟁터로 배정된 곳은 프랑스 서쪽에 위치한 항구도시 라로셸(La Rocelle)이었다. 그곳에서 패전 후 포로가 될 때까지 통신병으로 지냈다."자대 배치는 오로지 손가락에 달렸었지. 줄을 쭉 세워 놓고 너는 러시아, .. 2022. 2. 15.
출생의 비밀 나에게는 출생의 비밀이 있다.아버지가 몰래 낳아 데리고 온 딸도 아니고 고 권사님이 내 엄마인 것도 맞다. 나는 주민등록표에 기재된 1968년도 겨울이 아닌 67년 가을에 태어났다. 서울특별시 종로구에서 내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지방에서 막 올라온 노동자였다. 딸내미 출생 신고하러 서울에서 본적지인 익산까지 가기에는 거리도 멀고 겨를도 없었다. 아버지는 당시 익산에 사셨던 할머니께 내 출생신고를 부탁하셨지만, 할머니는 까맣게 잊어버리셨다. 둘째도 손녀라 시큰둥하셨던 걸까? 그래도 좀 너무하셨다. 여러 해가 지나 이 사실을 아신 아버지가 부랴부랴 나를 68년생으로 뒤늦은 출생신고를 하셨다. 이렇게 내 가짜 생년월일이 생겨났다. 초등학교 입학통지서 역시 동사무소 직원에게 돈 주고 간신히 받으셨다. 덕분에 .. 2022. 2. 7.
슬기로운 연금 크레바스 뛰어넘기: '3 + 4 법칙' 독일에는 일시불로 지급되는 퇴직금이라는 것이 없다. 회사가 해고하거나 특별한 상황에서만 위로금(Abfindung)을 주기도 하지만 연금과는 성격이 다르다. 내 나이 또래의 은퇴자들은 67세가 되면 독일의 연금 공단(Deutsche Rentenversicherung)에서 퇴직연금을 받는다. 다행히 남편은 조기 수령이 가능해서 63세부터 연금을 받을 수 있지만, 나는 12년을 기다려야 한다. 11년이 아닌 12년 후에 연금을 받는 데는 내 출생의 비밀이 있다. 각자 직장 생활하면서 연금 공단에 넣어둔 돈이 매달 통장에 찍히기까지 우리는 적잖은 소득 절벽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우리 둘이 받는 퇴직연금으로 노후를 보는 데 어려움은 없다. 문제는 연금 수령까지 소득 없는 기간이다. 일자리를 구하면 되겠지만, .. 2022. 2. 4.
우리들의 인천 상륙작전 1992년 가을, 독일의 옛 수도였던 본(Bonn)으로 공부하러 떠났을 때 나는 스물다섯 생일을 며칠 앞두고 있었다.1998년 봄, 본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했을 때 나는 서른이었다.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지 넉 달이 되어갈 즈음에 남편이 청혼했다. 당시 남편은 대학 졸업 후 막 취업을 한 상태였다. 잠시 한국으로 들어온 독일인 남편과 결혼식을 올리고 나는 다시 독일로 떠났다. 이번에는 학생비자가 아닌 결혼 이민 비자를 신청해놓고. 독일 어느 잡지사와의 인터뷰 때 이런 질문을 받았다."독일에서 산 날이 더 많은데, 당신의 고향은 어딥니까?""내 고향은 내가 태어난 곳, 대한민국입니다. 여기서 산 날이 한국보다 많다고 해도 변하지 않는 사실입니다. 독일에는 내 집이 있습니다. 남편과 내가 하루의 일과를 마치.. 2022. 2. 3.