밖에 나가면 편히 눈 둘 데가 없다.
길을 걷다 보면 시선이 닿는 곳마다 수많은 금지 문구가 눈을 찔러댄다.
하지 마라, 금지한다. 온통 금지 투성이다. 심지어 산 정상에 올라도 눈앞에 펼쳐진 경치보다 붉은 글씨로 쓰인 금지 사항들이 먼저 눈에 들어온다. 접근 금지, 야호 소리 지르기 금지, 쓰레기 투기 금지, 이런 금지 저런 금지...
30여 년 독일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인천상륙작전'을 무사히 마친 첫해만 해도, 이래저래 금한다는 말들은 들기름 좀 챙겨가라는 엄마의 잔소리 정도로 여겼다. 지하철 계단마다 촘촘히 붙어 있는 우측통행 문구나 붐비는 환승 구역의 자리 이동에 대한 안내문도 출퇴근 혼잡을 피하기 위한 안전조치려니 했다. 하지만 목적지에 닿을 때까지 반복되는 안내 방송을 견디는 일은 고역이었다. 이렇게 하지 마시고, 저렇게도 하지 마시라는 전 국민 계몽 방송에 '이게 뭐지?' 하는 반감이 고개를 들었다. 급기야 '불쾌감을 유발할 수 있으니 성적 접촉을 하지 마시라'는 경고가 흘러나올 때는 손발이 오글거렸다. 시선이 닿는 곳마다 박혀 있는 금지 문구도 모자라, 내릴 때까지 꼼짝없이 귀를 내주어야 하는 금지 방송이 폭력적으로 다가왔다.
심지어 사적 공간에서 이러한 계몽적 폭력을 맞닥뜨렸을 때는 경악을 금치 못했다.
아침밥을 먹고 느긋한 기분으로 거실에 앉아 있던 어느 아침, 귀 안으로 밀어닥친 둔탁한 방송음.
"아아, 관리사무실에서 알려드리겠습니다~"
담배를 피우지 말라, 개똥을 잘 치워라, 실내에서 큰 소리로 말하지 말라는 등의 내용이었던 것 같다. 전 주민이 강제로 청취해야 할 내용이라 하기에는 너무도 계몽적이었다. 집 안까지 계몽과 통제의 스피커를 켜두어야만 유지되는 질서란 얼마나 취약한가.
안내 문구야 잘 보이는 곳에 한두 개 붙여두면 될 일이다. 하지만 절대 빈틈을 주지 않겠다는 듯 금지 옆에 금지, 그 곁에 또 금지가 고구마 줄기 엮이듯 붙어 있다. 같은 문구를 덕지덕지 도배하는 것도 모자라, '걷거나 뛰지 마세요'라는 손바닥 배낭을 멘 노인 인력까지 지하철역 에스컬레이터에 배치된다. 과도함을 넘어 강박적이다.
그래, 오죽하면...
오죽 발코니에서 담배를 피워댔으면, 오죽 개똥이 널브러져 있었으면, 오죽 쿵쾅거리고 내달렸으면, 그리고 오죽 불쾌한 접촉을 해댔으면 안팎으로 주민과 국민 계몽에 팔 걷고 나설까. 이해는 간다. 하지만 묻고 싶다. 과연 이것이 최선일까?
'이렇게 하니 그나마 이정도라도 유지되는 거야', 라는 말은 결과가 나아졌으니 계몽적 노력이 옳았다는 논리다. 그런데 '이정도'가 정말 금지 식 계몽 덕분일까? 관리사무실이 집안에 스피커를 켜고 계몽 방송을 해대는 덕분에 아파트 단지에 그나마 개똥이 줄었을까? 이런 방송이 없었더라면 층간소음으로 인한 칼부림이 끊일 날이 없었을까? 처벌 조항을 읊어대는 서슬 퍼런 지하철 방송이 없었더라면 지하철 타기가 겁났을까? 우리의 보편적 상식과 자유의지는, 성숙한 시민사회를 만드는 데 진정 아무런 쓸모도 없었던 걸까? 사방에 깔린 CCTV로 구석구석 지켜보며 넘쳐나는 금지 문구와 방송으로 시민을 교화하려 드는 대한민국이, 조지 오웰의 소설 「1984」 속 '빅 브라더' 사회와 닮아있어 오싹함마저 느낀다.
나는 '하지 말라'는 식의 규제형 계몽에 깊은 회의를 느낀다. 보편적 상식으로 금지해야 할 일들을 굳이 명시하다 보면, 도리어 '금지되지 않은 것은 해도 된다'라는 착각을 심어주기 때문이다. 온 나라가 금지로 가득 차고 곳곳에서 CCTV가 눈을 부라리는 사회. 이곳에서 사람들은 금지된 선만 넘지 않으면, 혹은 들키지만 않으면 그만이라는 이기적 태도를 학습한다. 결국 타율적 감시가 성숙한 자유의지의 성장을 가로막는 셈이다. 카페 테이블에 스마트폰을 두고 자리를 비워도 대한민국은 안전하다며 자부하는 사람들에게 묻고 싶다. 정작 CCTV가 없는 곳에서의 불법 유턴은 그저 사소한 '융통성'에 불과한 것인지.
매번 한국에 다녀갈 때마다 느꼈던 점이다. 이 사회는 단맛과 금지 문구가 서로 경쟁이라도 하듯 날로 심해진다. 모든 음식에 단맛을 버무려놓은 것처럼, 촘촘한 금지 문구는 삶의 빈틈을 허락하지 않고 곳곳을 가득 채우고 있다. 자극적인 단맛에 중독되듯, 우리는 점차 타율적 통제에 길들고 있는지도 모른다. 이러한 규제는 결국 스스로 판단하고 행동하는 내면의 힘, 즉 자유의지의 성숙함을 잃게 만든다. 팽팽하게 달궈진 이 과잉의 사회를, 이제는 서서히 제자리로 돌려놓아야 하지 않을까.

'그리고 후반전' 카테고리의 다른 글
| 최고의 인생 (0) | 2024.07.15 |
|---|---|
| 우리들의 놀이터 (0) | 2022.11.02 |
| 나는 재밌게 살기로 했다 (0) | 2022.06.08 |
| 중국을 사랑하는 남자 (0) | 2022.03.10 |
| 지도자의 중요성 (0) | 2022.02.15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