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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사학위를 하다 1998년 4월, 나는 독일 본(Bonn) 대학교에서 전산언어학으로 박사학위를 했다.나는 '박사학위를 받았다.'라고 하지 않는다. 누가 내게 거저 줘서 받은 것이 아니니까.'공부를 마쳤다.'라고도 하지 않는다. 공부는 끝이 없으니까. 대략 설명하자면, 전산언어학은 사람의 글(Text)과 말(Speech)을 컴퓨터가 이해하여 출력값을 다시 자연언어로 변환하는 것을 연구하는 학문이다. 잘 알려진 구글의 번역기, 애플의 Siri 등이 이 학문의 대표적인 결과물이다. 자연언어 처리(Natural Language Processing)는 인공지능의 핵심 기능 중 하나로 현재는 컴퓨터공학의 세부 분야에 속하지만, 내가 공부하던 1990년대 본 대학교에서는 하나의 독립된 학과에서 다뤄졌다. 나는 전산언어학을 공부하기.. 2022. 2. 9.
MBTI는 과학이다? "역시 MBTI는 과학이에요!!"내 MBTI 테스트 결과를 알려줬더니 한국에 있는 조카가 느낌표 팍팍 찍은 문자를 카톡으로 보내왔다. 올해 서른둘이 되는 조카와는 재테크와 관련해서 종종 대화를 나눈다. 성격 유형으로 투자 성향을 알 수 있다면서 조카는 어느 날 뜬금없이 MBTI 테스트를 권했다. 이모가 어느 유형일지 짐작은 가지만 한번 해보시라는 말도 덧붙였다.테스트 결과, 나는 ESTJ‐A(엄격한 관리자) 유형이다. 유형 설명을 나에게 비춰보자."훌륭한 질서는 모든 것의 기초이다."동의한다. "옳다고 생각되는 일은 거침없이 밀고 나가는 굳은 의지!"역시 동의 한다. "부족함을 인정할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단다. 이건 동의 못 하겠다. 난 부족함을 숨기지 않으니까. 안 되겠다, 내가 누구인지 리스트를 .. 2022. 2. 7.
출생의 비밀 나에게는 출생의 비밀이 있다.아버지가 몰래 낳아 데리고 온 딸도 아니고 고 권사님이 내 엄마인 것도 맞다. 나는 주민등록표에 기재된 1968년도 겨울이 아닌 67년 가을에 태어났다. 서울특별시 종로구에서 내가 태어났을 때 아버지는 지방에서 막 올라온 노동자였다. 딸내미 출생 신고하러 서울에서 본적지인 익산까지 가기에는 거리도 멀고 겨를도 없었다. 아버지는 당시 익산에 사셨던 할머니께 내 출생신고를 부탁하셨지만, 할머니는 까맣게 잊어버리셨다. 둘째도 손녀라 시큰둥하셨던 걸까? 그래도 좀 너무하셨다. 여러 해가 지나 이 사실을 아신 아버지가 부랴부랴 나를 68년생으로 뒤늦은 출생신고를 하셨다. 이렇게 내 가짜 생년월일이 생겨났다. 초등학교 입학통지서 역시 동사무소 직원에게 돈 주고 간신히 받으셨다. 덕분에 .. 2022. 2. 7.
슬기로운 연금 크레바스 뛰어넘기: '3 + 4 법칙' 독일에는 일시불로 지급되는 퇴직금이라는 것이 없다. 회사가 해고하거나 특별한 상황에서만 위로금(Abfindung)을 주기도 하지만 연금과는 성격이 다르다. 내 나이 또래의 은퇴자들은 67세가 되면 독일의 연금 공단(Deutsche Rentenversicherung)에서 퇴직연금을 받는다. 다행히 남편은 조기 수령이 가능해서 63세부터 연금을 받을 수 있지만, 나는 12년을 기다려야 한다. 11년이 아닌 12년 후에 연금을 받는 데는 내 출생의 비밀이 있다. 각자 직장 생활하면서 연금 공단에 넣어둔 돈이 매달 통장에 찍히기까지 우리는 적잖은 소득 절벽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우리 둘이 받는 퇴직연금으로 노후를 보는 데 어려움은 없다. 문제는 연금 수령까지 소득 없는 기간이다. 일자리를 구하면 되겠지만, .. 2022. 2. 4.
우리들의 인천 상륙작전 1992년 가을, 독일의 옛 수도였던 본(Bonn)으로 공부하러 떠났을 때 나는 스물다섯 생일을 며칠 앞두고 있었다.1998년 봄, 본 대학교에서 박사학위를 했을 때 나는 서른이었다.유학을 마치고 귀국한 지 넉 달이 되어갈 즈음에 남편이 청혼했다. 당시 남편은 대학 졸업 후 막 취업을 한 상태였다. 잠시 한국으로 들어온 독일인 남편과 결혼식을 올리고 나는 다시 독일로 떠났다. 이번에는 학생비자가 아닌 결혼 이민 비자를 신청해놓고. 독일 어느 잡지사와의 인터뷰 때 이런 질문을 받았다."독일에서 산 날이 더 많은데, 당신의 고향은 어딥니까?""내 고향은 내가 태어난 곳, 대한민국입니다. 여기서 산 날이 한국보다 많다고 해도 변하지 않는 사실입니다. 독일에는 내 집이 있습니다. 남편과 내가 하루의 일과를 마치.. 2022. 2. 3.
나의 개발언어 변천사 C, C++, C#, Visual Basic, Java, Groovy, Kotlin, Python, TypeScript, Matlab, Tcl.소프트웨어 개발자였던 내가 업무에 사용했던 개발언어들이다. 가장 애착이 가는 언어는 C++다. 엄마는 아이가 울면 어디가 불편한지 안다고 한다. 엄마가 돼본 적이 없는 나는 그건 알 수 없다. 하지만 C++로 짠 코드가 자빠지면 증상과 발작 정도에 따라 어디를 들여다봐야 하는지 안다. C++가 배우기 어려운 언어라지만, 내가 짠 코드의 저 아래쪽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알 수 있게 해 준다. 나는 독일 본(Bonn) 대학교에서 Turbo C++ 플로피 디스켓 3장을 번갈아 껴가면서 C++를 배웠다. C++는 내 첫사랑 개발언어다.첫 직장에서는 C++만 사용했다... 2022. 2. 2.
나는 그만 열심히 살기로 했다 2020년 10월 어느 금요일 밤, 나는 부엌에서 정신을 잃었다.쓰러지던 찰나의 기억은 없다. 다급하게 나를 깨우던 남편의 목소리와 뒤통수의 통증만 떠오를 뿐이다. 구급차로 실려 가는 동안 의사가 점심에 뭘 먹었는지 물었지만 나는 답할 수가 없었다. 내가 뭘 먹었더라... 의사는 스트레스가 원인인 듯하다고 했다. 한 달 병가를 내고 집에서 쉬기로 했다. 직장 동료들에게는 미안했지만, 죽다 살아오니 보이는 것이 없었다. 병가로 쉬는 동안 시간을 되감아 봤다. 코로나 염병 때문에 2020년 3월 중순부터 시작한 재택근무는 반년을 넘기고 있었다. 새 제품 출시를 앞두고 나는 밤에 쉽게 잠들지 못했다. 자려고 누웠지만 안 풀리는 문제를 끌어안고 머릿속으로 기나긴 줄의 코드를 쓰며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간신히 잠들.. 2022. 1. 2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