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단짠단짠의 책읽기 나는 침대에서 스탠드 불빛으로 책을 읽고 있다. 옆에 비스듬히 앉아 독서하는 남편을 방해하고 싶지 않아 터지는 웃음을 꾹꾹 누르고 있다. 참던 방귀 쏟아지듯이 결국 웃음이 터지고 만다. 오랜만에 책을 읽으며 크게 웃어본다. 김호연 작가의 소설 ≪망원동 브라더스≫다. 뭐 이런 한숨 나오는 이야기를 몽글몽글 유쾌하게 쓴다니. 하루의 끝자락에 책 읽기는 꿀맛이다. 우리 집 침실에는 TV(어차피 이건 집에 없다), 오디오 같은 전자 기기가 없다. 잠들기 전 책 읽는 즐거움을 만끽하기 위해서다. 스마트폰은 침실 문을 넘지 못한다. 남편과 나의 불문율이다. 스마트폰은 침실 앞 협탁에 무음으로 올려놓는다. 잠들기 전 나는 전자책을 읽고 남편은 종이책을 읽는다. 내게 전자책은 4차 산업혁명에 버금간다. 읽고 싶은 모국.. 2022. 4. 7.
나의 스크럼 이야기 마지막 일터에서 나는 주 4일(에 준하는) 근무를 했다. 근로계약서에는 주당 5일 40시간 근무와 일 년 30일 유급휴가가 명시되어 있다. 월요일부터 목요일까지는 스크럼(Scrum) 방식에 따라 팀 과제를 수행했고 금요일에는 부서 활동을 했으니 업무로만 따진다면 완벽한 주 5일 근무는 아니었다. 금요일에는 팀 과제를 수행하지 않고 서로 필요한 정보를 교환하거나 주제를 정해 토론하는 식의 소규모 워크숍을 진행했다. 참석 여부는 각자가 결정했다. 부서 활동을 하는 금요일을 오픈 프라이데이(Open Friday)라고 불렀다.마당에 꽃 가꾸고 그림 그리는 나의 언니가 스크럼이 뭐냐고 물어보면 이렇게 설명할까 한다."언니가 스크럼의 역사, 고안한 사람들에 대한 관심은 없을 테니 이건 패스~. 스크럼은 팀이 과제를.. 2022. 4. 4.
그 아이, 정아 드디어 밤을 꼴딱 새우고 봤다. 드라마 을.그리고 그 아이, 정아를 기억해냈다. 은 오래전 언니가 꼭 보라던, 생각할 거리가 많고 재밌다며 추천했던 드라마였다. 하지만 보지 않았다. 한번 시작하면 중간에 끊지 못하고 밤새고 볼 테고, 출근해서도 다음 내용이 궁금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테니까. 주중에는 회사 일로, 주말에는 밀어뒀던 집안일 하느라 은 내게서 금세 잊혔다. 자발적 은퇴가 시작된 올해 초부터 더 이상 회사에 매이는 시간은 없지만 '드라마나 보고' 있기는 싫었다. 그러다 얼마 전에 허리 디스크가 터져 남편이 병원에 입원했다. 혼자 있는 집에 사람 목소리가 필요했다. 불현듯, 문득, 느닷없이 이 생각났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나는 초등학교 때 우리 반 아이, 정아(이름이 정화일 수도 있겠다)를 .. 2022. 3. 31.
달력의 용도 나는 머리가 복잡하면 달력 한 장을 뜯어낸다. 달력은 크면 클수록 좋다. 뒤죽박죽 엉켜있는 생각을 단어 혹은 단문으로 텅 빈 달력 뒷면에 하나씩 끄집어낸다. 깊이 생각하지 않고 떠오르는 대로 적는다. 색연필, 사인펜, 북 마커가 총동원된다. 머릿속에서 꺼낸 순서가 아닌, 같이 묶을 수 있는 덩어리로 적다 보면 하얀 달력 위에는 자석에 붙은 쇳가루 모양들이 생겨난다. 이렇게 내 생각을 형체로 마주한다. 분류화 작업의 어려움은 포스트잇으로 보완한다. 작업이 끝나면 벽에 붙여놓고 나와 소통한다. 생각 묶음을 하나씩 들여다보며, 하지 말 것들을 솎아내고 해야 할 일에 집중한다. 회사에서는 마인드맵(Mindmap)을 사용했지만, 내 머릿속을 쏟아놓는 데는 달력을 이용한 아날로그 방식을 선호한다. 텅 빈 백지가 주.. 2022. 3. 28.
나는 쇼핑이 싫다 나는 쇼핑이 싫다.예전에도 그랬고 지금도 그러하니, 쭈욱 그럴듯하다. 뭘 살지도 모르면서 이 가게 저 가게 기웃거리는 것이 내게는 꽤 피곤한 일이다. 계절이 바뀌면 무슨 옷이 필요한지 파악해서 구매 목록을 작성한다. 목록 작성이 끝나면 아주 큰맘 먹고 주말에 쇼핑하러 나간다. 가장 짧은 동선으로 이동하면서 구매 목록을 지워나간다. 한 가게에서 다 살 수 있으면 횡재한 날이다. 쇼핑은 내게 재미가 아니라 일이다. 그것도 어지간히 하기 싫은 일이다. 나 역시 충동구매를 할 때가 있다. 예를 들어, 바지 한 벌 사려고 갔는데 아주 맘에 들면 다른 색상으로 두어 벌 더 산다. 같은 모양인데 색깔만 다르게. 이러면 다음 해까지 바지 살 일이 없다. 편리함 외에 내가 충동구매를 하는 일은 (거의) 없다. 그냥, 갑.. 2022. 3. 24.
서화의 펭귄 인형 외국에서 오래 살다 보니 재주 하나가 늘었다. 내 손이 저울이 되었다. 처음 한국에 오갈 때는 일일이 가방 무게를 쟀지만 이제는 쓱 들어보면 견적이 나온다. 매번 독일로 가져올 짐이 그리도 많은지 내 손저울은 아슬아슬하다. 나는 체크인할 때 무게 초과로 짐 빼는 것이 끔찍이도 싫다. 등 뒤로 줄 서 있는 낯선 사람들 앞에서 지극히 사적인 영역을 열어젖힐 때면 투명망토라도 뒤집어쓰고 싶다. 더 질색인 것은 계획해서 꾸린 가방에서 계획 없이 뭔가를 꺼내야 한다는 점이다. 무게 초과한 가방에서 무엇을 빼내야 할지에 대한 순간적 판단은 '계획의 여왕'인 나에게는 너무나 무리한 요구다. 한국에는 아기자기하고 예쁜 것들이 참 많다. 다 가져오고 싶지만 어지간한 것들은 독일에서 산다. 우리 집에 예쁘고 앙증맞은 것 .. 2022. 3. 23.
독일 사람들은 정말 쌀쌀맞을까? 독일에 사는 외국인들에게 독일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쌀쌀맞다', '차갑다'라고 말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할까? 만약 내가 '그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이 선입견을 깨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을지도 모르겠다. 에피소드 하나아주 오래된 이야기다. 따사로운 햇살이 비취는 5월 중순 어느 토요일, 누군가의 갑작스러운 제안으로 친구들과 당일치기로 라인(Rhein)강을 따라 자전거 여행을 했다. 계획 없이 떠나는 여행이 주는 설렘 가득, 우리는 제각기 끌고 나온 고물 자전거에 올라탔다. 라인 강변은 조깅하거나 산책하는 사람들, 그리고 우리처럼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로 무척이나 붐볐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신나게 자전거를 타고 있는데 일행 중 한 명의 자전거에 문제가 생겼다. 바퀴가 터져 .. 2022. 3. 19.
야콥의 호박 야콥은 이웃집 아홉 살 난 꼬마의 이름이다.도나우(Donau) 동네로 이사 와서 사귄 첫 이웃의 아이다. 말없이 제 엄마 곁에 서 있기만 하던 야콥이 낯이 익자 저세상 말을 쏟아내기 시작했다. 내가 도저히 알아들을 수 없는 바이에른(Bayern) 사투리다. 올망똘망 귀엽게 생긴 아이 입에서 흘러나오는 별나라 말에 홀려 나는 눈에 하트 서너 개는 달고 연신 고개를 끄덕인다. 아이는 자기 말을 못 알아듣는 나를 이해 못 하는 눈치다. 야콥은 나의 표준 독일어를 잘 알아듣는다. 작년 가을 이삿짐 정리가 대충 끝나갈 무렵, 두어 번 마주친 야콥이 제 엄마와 함께 우리를 찾아왔다. 야콥 엄마의 두 손에는 커다란 호박이 들려 있었다."야콥이 추수한 호박이에요. 수프로 먹으면 맛있어요."세상에나, 저 콩알만 한 아이.. 2022. 3. 18.
팀, 플러스 섬 게임 내가 마지막으로 일했던 팀에는 모든 DISC 성격 유형이 존재했다. 주도형(Dominance), 사교형(Influence), 안정형(Steadiness), 그리고 신중형(Conscientiousness). 나는 신중형이다. 관리자는 한 팀에 DISC 유형이 골고루 있으면 이상적인 팀 구성으로 여긴다. 서로 보완하며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기 때문이다. 내가 퇴사한 회사에서, 한 번은 팀이 크게 삐걱댄 적이 있었다. 사교형인 동료가 그해 목표로 주도형이 되겠다고 선언했다. 자신은 주도형과 사교형의 경계에 있는데 주도형으로 넘어가겠다면서. 한번 말 섞기 시작하면 언제 끝날지 모르고 여기저기 기웃거리며 부서의 최신 정보는 꿰고 있는 동네 통장 같은 친구였다. 게다가 어찌나 말솜씨가 좋은지 논쟁이 붙으면 당해낼.. 2022. 3. 16.
칼린 이야기 시아버지 칼린이 들려준 이야기다."마을 한가운데 있던 성당 첨탑에서 12시가 되면 종소리가 울려 퍼져. '정오구나. 점심 먹을 때가 됐네.'라고 생각했지." 칼린은 독일 나치 정권 때 소년병으로 징집되었다. 독일이 패전한 후 프랑스의 포로수용소에 갇혀 지냈는데 늘 배가 고팠다. 전쟁포로로 농가에서 강제 노역을 했는데, 오히려 그게 더 나았다. 일은 고되어도 배는 곯지 않았으니까. 뼈가 바스러지게 일하고 있으면 뎅그렁~ 뎅그렁~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계는커녕 변변한 밭일하는 장비도 없이 일하던 칼린에게 종소리는 12시가 되었으니 곧 밥 먹을 수 있음을 의미했다. 노역하던 농가에서 점심밥만큼은 넉넉하게 줬다. 전쟁을 겪고 포로 때의 배고픔 때문이었을까? 칼린은 밥을 남기지 않았다. 식당에서 남은 음식은 .. 2022. 3. 11.
중국을 사랑하는 남자 중국을 사랑하는 남자, 내 남편이다.오죽하면 '내가 좋아, 중국이 좋아?'하고 물어볼 정도다. 어찌나 기묘하게 빠져나가는지 아직 답을 듣지 못했다. 우리는 본(Bonn) 대학교 학생 식당에서 처음 만났다. 남편은 90년도 초에 중국에서 3년 유학했고, 이후 본 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했다. 지금은 출판사에서 일하지만 직업경력 8할은 중국 무역과 금융에 관련된 일이었다. 남편이 무역 회사에 다닐 때 1년에 서너 번은 중국으로 출장을 갔다. 남편의 일정이 끝날 즈음이면 나도 중국으로 날아가 둘이서 여행을 하곤 했다. 한 번은, 남편의 거래처에서 내가 중국에 와 있는 것을 알고 저녁 식사에 초대한 적이 있었다. 식사 내내 대여섯 명의 거래처 직원들과 능숙하게 중국어로 대화하는 남편이 참 멋져 보였다. 똑똑한 아.. 2022. 3. 10.
'야반도주'를 하다 2021년 가을, 남편과 나는 필사적으로 루르(Ruhr) 공업지역을 떠났다. 그곳에서 9년을 살았다. 우리들의 직장 때문에 정착한 곳이었지만 사는 내내 마음이 가지 않았다. 일단 사람이 너무 많았다. 축구 (정확히 말하면 FC Schalke 04 또는 Borussia Dortmund 축구팀) 아니면 할 얘기가 없었다. 그리고 개똥을 치우지 않았다. 이것만으로도 그 동네를 떠날 이유가 충분했다. 루르 공업지역은 여러 도시로 이뤄진 메트로폴리스다. 이에 속한 대표적인 도시가 에센(Essen), 보훔(Bochum), 도르트문트(Dortmund) 등이다. 2차 세계대전 후 철강과 석탄 산업의 발달로 튀르키예, 그리스, 이탈리아 등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이 지역의 탄광에서 일했다. 1960~70년대 대부분의 .. 2022. 3. 9.
아무튼, 합격 본(Bonn) 대학교에서 공부할 때의 일이다. 한국에서 고등학교는 문과였고, 대학에서는 독일어를 전공한 내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부전공으로 컴퓨터공학을 공부하기로 했다. 훗날 내 박사논문 지도교수인 렌더스(Prof. W. Lenders) 교수가 논문 지도를 받고 싶으면 실력부터 갖춰 오라고 했으니 나는 기초부터 제대로 공부할 셈이었다. 첫 학기에는 몇몇 전공 수업을 들었지만, 두 번째 학기에는 오로지 부전공 딱 한 과목만 수강 신청했다. . 컴퓨터공학을 전공으로 공부하든, 부전공으로 택했든 꼭 통과해야 하는 과목이었다. 이 과목을 이수하지 못하면 부전공을 바꾸거나 대학을 옮겨야 했다. 계단식 강의실은 500명은 족히 돼 보이는 앳된 얼굴의 새내기들로 늘 도떼기시장 같았다. 교수는 수업 내내 여섯 면의.. 2022. 3. 4.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음이라' 코로나 염병이 창궐하기 몇 달 전에 여권이 만료되었다. 여권을 발급받은 지 그새 10년이 또 지난 것이다. 본(Bonn) 대사관 분관에서 새로 신청한 여권을 우편으로 받자마자 영주권을 갱신하러 아침 일찍 관할 외국인 관청(Ausländerbehörde)에 갔다. 빨리 일 처리하고 출근하려던 바람은 해당 창구 앞에 길게 늘어선 대기 줄에 물거품이 됐다. 대부분이 시리아에서 온 아랍계 외국인들이었다. '난민의 어머니'라 불리는 독일 전 수상 메르켈(Dr. A. D. Merkel)이 국경을 열어주어 내가 살던 동네에도 꽤 많은 난민이 살고 있었다.대기표도 없이 길게 늘어진 줄 끝에 자리를 잡자마자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Der Nächste!(다음 사람!)"나는 귀를 의심했다.'여기가 군대야? 수용소야.. 2022. 2. 28.
걸려 넘어져라! 독일의 한적한 마을이든, 복잡한 시내든 걷다 보면 길바닥에 10cm 크기의 정사각형 황동판이 박혀 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그 안에는 이름과 태어나고 죽은 날짜가 새겨져 있다. 사망 날짜는 독일 나치 정권이 집권하던 1933년에서 1945년 사이다. Stolpersteine(걸림돌), "걸려 넘어지는 돌"이라는 뜻을 지닌 황동판은 나치 정권의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그들이 살았던 집이나 일터 앞 길바닥에 박혀있다. 아래 여섯 개의 걸림돌들을 들여다보니 모두 성이 같다. 가족인 듯하다. 맨 오른쪽에는 이렇게 쓰여있다."1906년에 태어나 1942년 아우슈비츠(Auschwitz)로 끌려가 살해당한 율리우스 함부르거(Julius Hamburger)가 여기 살았다." 고개를 떨구고 걷다가 무심코 이런 황동.. 2022. 2. 26.
우리들의 축제 학생 때는 넉넉지 않은 주머니 사정 때문에, 직장 생활을 할 때는 시간이 여의찮아 한국에 자주 가지 못했다. 은퇴한 지금은 코로나로 묶여 옴짝달싹 할 수 없다. 참 얄궂다. 2~3년에 한 번꼴로 한국에 갈 때면 소풍날 받아놓은 아이처럼 들떠있었다. 인천 공항에서 짐을 찾아 게이트를 나서면 목을 길게 빼고 기다리던 가족들이 반가움 가득 우르르 다가왔다. 30년 동안 한결같은 풍경이다. 엄마가 늘 먼저 나를 알아보셨다."딸~"공항에 있는 수많은 딸 중에 엄마 딸인 나는 단번에 그 부름을 알아챘다. 어딘가에 앉아계셨던 아버지가 서둘러 오셔서 나를 꼭 안아주셨다. 족히 한 시간은 기다리셨으리라. 시간이 되면 언니, 남동생, 막냇동생이 부모님과 함께 나를 맞았다. 11시간 장거리 비행과 그전에 이미 3시간 넘게 .. 2022. 2. 25.
Team Autonomy 내가 퇴사했던 부서에는 부장이 없었다. 팀에 팀장도 없었다. 주임, 대리, 과장 같은 직급 역시 없었다. 대신 팀 안에서의 역할이 있었다. '품질 챔피언(Quality Champion)', '보안 영웅(Security Hero)', '설계 도사(Architecture Master)', ‘디자인 천재(UX‐Genius)’처럼 우스꽝스러운 이름이 붙은 역할을 팀원들이 상의하여 나눠 가졌다. 나는 품질 챔피언이었다. 이전 회사에서 소프트웨어 설계자 역할을 했던지라 설계 도사를 맡고 싶었지만, 내가 부서 이동으로 팀에 왔을 때는 품질 챔피언 역할만 남아있었다. 까짓~ 하지 뭐, 하고 맡은 역할이었는데 상당히 매력적이고 재밌었다. 팀 안에서 각 개발자는 개발 과제와 역할이라는 두 가지 임무를 수행했다. 예를 들어.. 2022. 2. 22.
내가 배낭을 메는 이유 "어휴, 그 배낭 좀 내려놔. 무겁지도 않아?"재작년 '막내막내'(아버지는 막내딸의 막둥이를 이렇게 부르신다)의 중학교 졸업식 때 기어이 막냇동생에게 한 소리 들었다. 그런데도 나는 조카의 졸업식 내내 배낭을 등짝에서 떼어내지 않았다. 아이의 졸업사진에는 큼직한 배낭을 멘 '독일 이모'가 보따리장수처럼 배시시 웃고 있겠지만 어쩌겠는가, 나도 어쩔 수가 없는걸. 나는 핸드백을 드는 대신 배낭을 멘다. 방수 잘 되고 등짝 편한 배낭은 내게 구찌고 루이비통이다. 내 배낭은 식당에서 밥 먹을 때면 충성스러운 개처럼 나의 발밑을 지킨다. 화장실 갈 때도 메고 간다. 어디를 가든 나는 배낭을 멘다. 대신 두 손은 자유롭다. 손에 든 것은 쉽게 잃어버릴 수 있으니 모든 소지품을 배낭에 쓸어 담고, 오직 배낭 하나만 .. 2022. 2. 21.
은퇴는 처음이라 자발적 은퇴를 한 지 두 달이 넘어선다.두 달 남짓 동안 늘어지게 낮잠을 잔 적이 없으며 밤새워 넷플릭스로 한국 드라마를 본 적 또한 없다. 사실 나는 넷플릭스 계정이 없다. 집에 TV도 없다. 남편은 아침 6시, 나는 그보다 30분 늦게 일어난다. 먼저 잠에서 깬 남편은 과일과 오트밀을 꺼내 조리대 위에 올려놓고 달걀 두 알에 구멍을 뚫어놓는다. 식탁을 정리하고 샤워를 한 후에 나를 깨운다. 나는 씻고 부엌으로 가 과일을 잘게 썰고 오트밀을 우유에 불린다. 불린 오트밀에 채 썬 과일과 잘게 부순 호두를 섞는다. 달걀은 6분 반숙으로 익힌다. 이 스위스식 시리얼과 반숙 달걀이 우리의 아침밥이다. 내가 아침을 준비하는 동안 남편은 30분 정도 산책을 다녀온다. 집에서 몇 걸음만 걸으면 자연보호구역이다. 산.. 2022. 2. 17.
지도자의 중요성 나의 시아버지 칼린은 2차 세계 대전 때 나치 독일군이었다.아내를 위해 부엌 창 앞에 빽빽이 장미를 심고 여기저기 후원을 아끼지 않는 평범한 할아버지 칼린이 영화에서 봤던, 피 한 방울도 나지 않을 듯한 나치 군인이었다니! 나는 칼린이 나치 정권 때 군인으로 어디에서 뭘 하고 있었는지 궁금해졌다. 조심스레 묻자 칼린은 어제 일처럼 자신의 이야기를 들려줬다. 1925년 12월생인 그는 1943년 열일곱의 나이로 나치 정권에 징집됐다. 말 그대로 징집은 그의 선택 사항이 아니었다. 어린 나이에 전쟁터로 배정된 곳은 프랑스 서쪽에 위치한 항구도시 라로셸(La Rocelle)이었다. 그곳에서 패전 후 포로가 될 때까지 통신병으로 지냈다."자대 배치는 오로지 손가락에 달렸었지. 줄을 쭉 세워 놓고 너는 러시아, .. 2022. 2. 15.