코로나 염병이 창궐하기 몇 달 전에 여권이 만료되었다. 여권을 발급받은 지 그새 10년이 또 지난 것이다. 본(Bonn) 대사관 분관에서 새로 신청한 여권을 우편으로 받자마자 영주권을 갱신하러 아침 일찍 관할 외국인 관청(Ausländerbehörde)에 갔다. 빨리 일 처리하고 출근하려던 바람은 해당 창구 앞에 길게 늘어선 대기 줄에 물거품이 됐다. 대부분이 시리아에서 온 아랍계 외국인들이었다. '난민의 어머니'라 불리는 독일 전 수상 메르켈(Dr. A. D. Merkel)이 국경을 열어주어 내가 살던 동네에도 꽤 많은 난민이 살고 있었다.
대기표도 없이 길게 늘어진 줄 끝에 자리를 잡자마자 쩌렁쩌렁한 목소리가 들려왔다.
"Der Nächste!(다음 사람!)"
나는 귀를 의심했다.
'여기가 군대야? 수용소야? 다음 사람이라니!'
독일 시민을 상대하는 관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말투다. 딱 봐도 난민처럼 보이는 민원인들을 만만히 본 것이다. 나는 고개를 내밀어 앞쪽을 살폈다. 줄 선 사람들과 공무원들 사이에는 등판에 Security라고 쓰인 유니폼을 입은 덩치 큰 남자가 서 있었다. 이 사람이 민원 창구가 빌 때마다 소리를 내지르고 있었다.
'다음 분 모시겠습니다.'까지 바랐던 것은 아니지만 관청에서 이런 막말을 듣고 있을 수는 없었다. 맥박수가 빨라지고 눈에서 불꽃이 튀었다. 내 상태가 이러면 생각보다 말이 먼저 튀어나온다.
"여보세요, '다음 분!(Der Nächste, bitte!)'이라고 말하세요!"
내 말에 갑자기 모든 소음이 멈춰버렸다. 목을 길게 빼고 나와 눈을 마주치는 보안요원에게 이렇게 덧붙였다.
"이게 올바른 독일어 표현입니다."
재벌 3세 드라마 주인공처럼 '내가 태어나서 이런 모욕은 처음이야.'라는 표정으로 나를 노려보던 보안요원은 민원 창구가 비자 다시 "다음 사람!"이라고 소리쳤다.
말이 안 통하는 사람과 말을 섞어봤자 싸움뿐이다. 조치를 취하면 된다. 업무를 보고 난 후 출입구에 있는 안내데스크에서 그 보안요원에 대해 물었다. 보안요원들은 관청 소속이 아니라서 이름을 알려줄 수가 없단다. 외국인관청이 세 들어있는 건물의 주인이 건물 보안을 위해 고용한 사람들이라는 것이다. 버젓이 민원 업무에 도움을 주는 보안요원이 건물주가 고용한 사설팀 소속이라서 자신들과는 하등의 관계가 없다는 관청 직원의 해명에 '아~ 그러세요.'하고 물러설 내가 아니다. 여기서도 말이 안 통한다. 시청과 얘기할 차례다.
서둘러 회사로 출근했다. 컴퓨터를 켜자마자 시청 전화번호를 알아내 사무실 밖으로 나가 전화를 걸었다. 자초지종을 들은 시청 직원은 사태 파악 후 일주일 안에 연락을 주겠다고 했다. 민원 처리하는데 일주일이나 걸리는 데가 독일 관청이다!
통화 후 콧김 날리며 사무실로 들어서자 동료들이 호기심 가득 바라봤다. 늦게 출근해서 사라지더니 얼굴에 '나 화났음' 티를 팍팍 내는 이유를 물었다. 내 설명을 들은 독일 동료들의 반응이 흥미로웠다.
"와~ 나는 너처럼 못했을 거야. 관청에 가면 이상하게 주눅 들거든, 안 그래 마쎌?"
"응, 나도 아무 말 못 했을 거야. 독일 사람들은 공기관의 업무와 관련해서는 써도 삼키지 너처럼 따지질 않아."
이러니 독일 공무원들의 관료주의와 불친절이 조금도 나아지지 않는 것이다.
시청에 항의한 지 하루 만에 전화가 왔다. 일주일씩이나 걸린다는 사태 파악이 벌써 끝났나 보다. 관공서의 이런 빠른 일 처리는 독일 생활 십수 년 만에 처음 겪어봤다. 담당자는 그런 불미스러운 일이 일어나 유감이라는 '일본정부식' 사과를 했다. 보안요원은 건물 보안을 위해 건물주가 인력 사무소를 통해 고용한 사람들이라 관청이 나서서 인사 조처할 수 없음을 양해해 달라고 했다. 건물주에게는 주의를 전달했다고 덧붙였다. 나는 조만간 다시 외국인 관청에 가야 하는데 개선된 모습이 보이지 않으면, 이번엔 시장하고 담판 짓겠다고 으름장을 놓았다.
두어 달이 지나서 갱신된 영주권을 받으러 오라는 연락을 받았다. 한걸음에 달려갔다. 내심 궁금했으니까. 이번에는 기다리는 줄이 길지 않았다. 민원 창구 앞쪽에는 "이쪽 창구로 가세요."라며 친절하게 안내하는 낮선 보안요원이 서 있었다. 흐뭇했다. 그리고 딱했다. 시청에서는 상상도 할 수 없는 일이 외국인 관청에서는 민원을 넣어야 시정되는 현실이 씁쓸했다. 나야 죽을 때까지 독일에서 살아도 된다는 영주권이 있지만, 그날 나와 그 자리에 있었던 외국인들은 철저히 을의 입장이었을 것이다. 체류 허가가 연장되지 않으면 필사적으로 도망쳐 나온 곳으로 다시 쫓겨가야 하는 난민들도 있었을 테고, 생계유지를 위한 지원이 필요한 사람들도 있었을 것이다. 나는 그들이 내뿜는 불안과 주눅을 어렵잖게 눈치챌 수 있었다. 외국인 업무와는 아무 상관도 없는, 인력시장에서 파견된 용역 역시 그들의 불안감을 모를 리 없었다. 그리고 그 절박함에 비루한 갑질을 해댔다.
수년 전 남편과 다니던 독일 교회에서 예배 설교를 막 시작하려던 목사가 교인들을 일으켜 세웠다.
"모두 일어나 보세요."
교인들이 의아해하며 일어섰다.
"여러분 중에 독일 국적이 아닌 분들은 자리에 앉으세요."
나를 포함한 몇몇 사람들이 자리에 앉았다.
"폴란드로 귀속된 옛 독일 땅에서 이주해 오신 분들은 앉으세요."
수십 년 전 나치 독일의 패전으로 폴란드 국경에 접해있던 고향 땅에서 소련군에 의해 하루아침에 거의 맨몸으로 쫓겨났던, 나이 지긋한 몇몇 독일 사람들이 자리에 앉았다.
"러시아에서 귀환하신 분들도 앉으세요."
러시아에서 뿌리를 내리고 살았던 독일계 이주민도 적지 않았다.
"이곳이 고향이 아닌 분들도 앉으세요."
그때까지 내 옆자리에 서 있던 남편이 앉았다. 우르르~ 꽤 많은 사람이 앉고 나니 서 있는 사람은 몇 되지 않았다. 목사의 설교가 이어졌다.
"자, 보세요. 우리 대부분이 이방인입니다. 우리가 처음 이곳으로 왔을 때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습니다. 우리도 이방인이었음을 잊지 마세요. 성경 말씀입니다. '너는 이방 나그네를 압제하지 말며 그들을 학대하지 말라. 너희도 애굽 땅에서 나그네였음이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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