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반전 이야기

Team Autonomy

선한 부자-이현주 2022. 2. 22. 22:32

내가 퇴사했던 부서에는 부장이 없었다. 팀에 팀장도 없었다. 주임, 대리, 과장 같은 직급 역시 없었다. 대신 팀 안에서의 역할이 있었다. '품질 챔피언(Quality Champion)', '보안 영웅(Security Hero)', '설계 도사(Architecture Master)', ‘디자인 천재(UX‐Genius)’처럼 우스꽝스러운 이름이 붙은 역할을 팀원들이 상의하여 나눠 가졌다. 나는 품질 챔피언이었다. 이전 회사에서 소프트웨어 설계자 역할을 했던지라 설계 도사를 맡고 싶었지만, 내가 부서 이동으로 팀에 왔을 때는 품질 챔피언 역할만 남아있었다. 까짓~ 하지 뭐, 하고 맡은 역할이었는데 상당히 매력적이고 재밌었다.

 

팀 안에서 각 개발자는 개발 과제와 역할이라는 두 가지 임무를 수행했다. 예를 들어, 보완 영웅은 자기 과제에서 설계에 해당하는 부분을 설계 도사와 상의했다. 설계 도사는 보완 영웅에게 자신이 맡은 과제의 보안에 관한 조언을 구했다. 품질 챔피언이었던 나는 테스트 주도 개발(Test Driven Development) 원칙에 따라 단계별 테스트 전략을 세워 팀원들이 과제를 효과적으로 테스트할 수 있게 도왔다. 팀은 직급 없는 수평관계에서 오로지 역할 중심으로 움직였다.

 

부서에는 인사권을 가진 두 명의 관리자가 있었지만, 각 개발팀은 스스로 결정하고 그 결정에 책임을 졌다. 팀들이 상호 잘 작동하도록 돕는 것이 부서 관리자의 중요 역할이었다. 팀은 상명하복이 아닌 자율적으로 운영됐다. 같이 일할 동료를 뽑을 때면 팀원 모두가 면접관이었고, 지원자들에게 성적을 매겨 최종 합격자를 추려냈다. 큰 문제가 없다면 관리자는 팀의 결정에 따랐다. 결정에는 책임이 따르는 법. 새 팀원이 업무에 빨리 적응하고 과제를 수행할 수 있도록 팀은 다방면으로 도왔다. 그 친구를 뽑은 건 팀원 각 사람, 바로 나였으니까.

 

회사의 미래인 우리 부서는 차세대 제품 개발을 위한 연구부서로 출발했다. 기존의 개발환경을 완전히 엎고 새롭게 판을 짜는 시도들이 이뤄졌다. 부서 이동 후 개발언어 Java로 일 년 정도 일하던 중, 각 팀의 설계 도사들이 모여 Java 대신 Kotlin을 사용하자는 의견을 냈다. 각 팀은 장단점을 깨알같이 분석해서 꽤 오랫동안 논쟁을 벌였다. 결론은 한 팀 빼고 모두 Kotlin을 사용하는 데 찬성했다. Java 아니면 안 되는 이유가 차고 넘치는 팀에게 누구도 Kotlin으로 통합하라고 강요하지 않았다. 그 팀은 자체 결정에 따라 계속 Java를 개발언어로 사용했다. 사실 Java와 Kotlin 코드는 잘 연동된다. 문제 될 것 없다. 내가 회사를 떠날 때까지 그 팀은 여전히 Java로, 다른 팀들은 Kotlin으로 일했다. Team Autonomy의 정수를 보는 듯했다.

 

한국 뉴스에서 독일 정부의 코로나 정책에 반대하는 시위를 보신 엄마가 전화를 하셨다.

"그 나라 사람들은 정부 말을 왜 그렇게 안 듣는다니! 마스크도 안 쓰고 접종도 안 하고, 대체 왜 그런다니!"

"하하~ 엄마 저도 몰라요, 이 나라 사람들이 왜 이렇게 생겨 먹었는지. '우리 모두 다 같이 손뼉을 짝짝~' 이런 거 여기서는 안 통해요. 남들 손뼉 칠 때 발 구른다고 쥐어박을 수 없어요. 왜 너는 같이 안 하냐고 물어보면 밤새워 그 이유를 설명할 거예요. 다르다고 틀린 건 아니잖아요."

 

ⓒ 2022. 이현주, Vogtland/Germany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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