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반전 이야기

걸려 넘어져라!

선한 부자-이현주 2022. 2. 26. 03:08

독일의 한적한 마을이든, 복잡한 시내든 걷다 보면 길바닥에 10cm 크기의 정사각형 황동판이 박혀 있는 것을 종종 볼 수 있다. 그 안에는 이름과 태어나고 죽은 날짜가 새겨져 있다. 사망 날짜는 독일 나치 정권이 집권하던 1933년에서 1945년 사이다. Stolpersteine(걸림돌), "걸려 넘어지는 돌"이라는 뜻을 지닌 황동판은 나치 정권의 희생자들을 기리기 위해 그들이 살았던 집이나 일터 앞 길바닥에 박혀있다.

 

아래 여섯 개의 걸림돌들을 들여다보니 모두 성이 같다. 가족인 듯하다. 맨 오른쪽에는 이렇게 쓰여있다.

"1906년에 태어나 1942년 아우슈비츠(Auschwitz)로 끌려가 살해당한 율리우스 함부르거(Julius Hamburger)가 여기 살았다."

ⓒ 2022. 이현주

 

고개를 떨구고 걷다가 무심코 이런 황동판과 맞닥뜨리면 말 그대로 마음이 걸려 넘어져 쉽게 자리를 뜰 수가 없다. 눈을 들어 걸림돌의 주인공이 살았거나 일했을 건물을 훑어본다. 다시는 돌아오지 못한 그들의 터전에는 걸림돌이 주인의 혼백처럼 박혀 있다.

 

전에 살았던 '개똥 동네' 근처에는 나치 정권 때 게슈타포(Gestapo, 나치 비밀경찰)가 사용했던 건물인 슈타인바헤(Steinwache)가 보존되어 있다. 1970~80년대 민주화 운동을 하던 사람들을 불법 감금하고 고문했던 대한민국의 ‘남영동 대공분실’ 같은 곳이다. 게슈타포는 도르트문트(Dortmund)시에 살았던 남자 유대인들과 정권에 비판적인 인물들을 슈타인바헤에 가두고 고문한 뒤 강제수용소로 보냈다.

 

슈타인바헤 입구 앞뜰에도 몇 개의 걸림돌이 박혀있다. 희생자들의 이름, 체포된 날짜, 그리고 사망 날짜가 적혀있다. 이 중 한 걸림돌을 보고 경악했다. 패전을 불과 넉 달 앞두고 한 달도 못 돼 즉결 처형이라니!

 

왼쪽에서 세 번째 걸림돌:

"1889년생 아우구스트 드레케 (August Dreke)가 1945년 게슈타포에 체포되어, 그해 1월 23일 슈타인바헤에서 살해되었다."

 

ⓒ 2022. 이현주

 

언젠가 뮌헨(München) 근처에 있는 나치 정권의 다하우(Dachau) 강제 수용소에 간 적이 있었다. 주차장에는 여러 대의 대형 버스에서 내리는 학생들로 꽤 어수선했다. 왁자지껄 떠드는 아이들 틈에 끼여 만행의 입구로 들어섰다. 시간이 지남에 따라 아이들의 떠드는 소리가 잦아들었다. 외진 곳에 원형 그대로 보존된, 시체를 태우던 화덕을 보고 나온 아이들은 더 이상 말 한마디 하지 않았다. 소풍 나온 것처럼 들떠 있던 아이들이 초상집 다녀온 얼굴을 하고 있었다. 그들의 선조들이 무슨 짓을 했는지 똑똑히 보았으리라.

 

독일은 이 수치스럽고 잔혹한 역사를 숨기지 않는다. 학교에서 전세 버스 내서 참혹한 역사의 현장으로 아이들을 데려온다. 동화 속 마을 한복판에는 누런 걸림돌을 박아놓는다. 걸려 넘어지라고. 그리고 이 비극의 역사를 기억해 다시는 되풀이하지 말라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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