먼저, 대한독립 만세!
아침밥을 먹다가 문득 깨달았다. 맞아, 오늘이 광복절이지. 부랴부랴 태극기를 찾아 들고 두 손 번쩍 들어 '대한독립 만세, 대한민국 만세'를 홀로 외친 뒤 까만 철대문 위에 걸어놓았다. 외국에서 오래 살다 돌아오니 삼일절과 광복절에 태극기 다는 기쁨이 크다. 대한 독립을 위해 스러져 가신 선조들께 감사한 마음도 듬뿍이다.
며칠 전 2026년 8월 13일 자 독일 공영방송 tagesschau 기사를 흥미롭게 읽었다. 역대급 폭염으로 라인강의 수위가 낮아지면서 제2차 세계대전 당시 독일 나치군의 불발탄과 무기가 대량 발견된다는 내용이었다. 폭발물 처리로 인근 주민들이 대피하고 라인강 운항마저 중단된다고 한다. 이 가뭄에 침몰한 보물선이라도 발견되면 좋으련만, 두 번의 세계대전을 치른 전범국 독일은 메마른 강변에 드러난 폭발물 때문에 진땀을 빼고 있다. 사실 독일에서 2차 대전 불발탄이 발견되어 해체하는 일은 그리 낯선 풍경이 아니다.
내가 루르 공업지대에 살던 2014년 여름에 우편물 하나가 날아들었다. 몇 월 며칠 몇 시 어디에서 2차 대전 불발탄 해체 작업을 할 예정인데, 당신 집이 위험 반경 안에 있으니 그 시간 동안 집을 비우라는 안내문이었다. 하필 해체일이 일요일이었다. 집에 있었던 남편과 나는 사이렌이 울리자 집을 떠난 동네 사람들과 함께 줄지어 안전지대로 걸어갔던 기억이 난다. 오싹하면서도 색다른 경험이었다.
다시 최근의 독일 기사로 돌아가 보자.
기사의 독일어 제목은 이러하다.
"Niedrigwasser in Flüssen (낮은 강수위)
Und plötzlich liegt eine Bazooka am Ufer (그리고 갑자기 강변에 바주카포가 놓여있다)"
내가 기자였다면 ' 낮은 강수위, 감출 수 없는 81년 전의 과거'라고 기사 제목을 달았을 텐데.
기사에 따르면 패색이 짙어가던 1945년 1월, 라인 전선에 투입된 나치 독일군들이 탈영하며 무기를 라인강에 많이 버렸다고 한다. 군인이 자신의 목숨과 같은 무기를 왜 버렸을까? 기자는 당시 그들이 '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aus den Augen, aus dem Sinn)'는 심정이었을 것이라 전한다. 패전 후 연합군 역시 독일군에게서 몰수한 대량의 무기와 탄약을 강에 쓸어 담아 버렸다.
기사 속 탈영병들이 강물 속에 몰래 던져버린 무기들에 내 눈길이 머문다. '눈에서 멀어지면 마음에서도 멀어진다'는 말 뒤에 숨은 그들의 두려움과 수치심이 어렴풋이 전해진다. 그저 살고 싶었든, 나치군이었던 낙인을 지우고 싶었든 간에 그들이 눈에서 치워버리며 숨기려 했던 과거는 81년이라는 세월을 지나 메마른 강바닥에 고스란히 모습을 드러내고 있다.
제2차 세계대전의 대표적인 전범국인 독일과 일본.
81년 전 강물 아래로 던져버렸던 탈영병의 무기가 강바닥에 드러나듯, 국가의 과거사 역시 감출 수 없다는 걸 잘 알고 있는 독일은 끊임없이 반성하며 이웃 국가들과 더불어 사는 길을 찾고 있다. 하물며 그것이 사명이라고 말한다. 2025년 5월 8일, 독일 패전 80주년을 맞아 프리드리히 메르츠(Friedrich Merz) 독일 총리가 남긴 말은 적잖은 울림을 준다.
"Der 8. Mai ist für uns ein Tag der Dankbarkeit. Dass wir in einem freien Land in Freundschaft mit unseren Nachbarn leben, ist ein Geschenk – und ein Auftrag"
(5월 8일은 우리에게 감사의 날입니다. 우리가 자유로운 국가에서 이웃 나라들과 우정을 나누며 살아갈 수 있다는 것은 선물이자 사명입니다)
또 다른 2차 대전의 전범국인 일본은 어떠한가. 대한민국 광복절인 오늘, 일본 정치인들이 전쟁범죄자들이 합사된 야스쿠니 신사를 당당히 참배했다는 소식이 다시 들려온다. 어쩌면 일본이 진짜 잃어버린 것은 지난 '30년의 경제'가 아니라, 마땅히 느껴야 할 수치심조차 잊은 채 흘려보낸 '81년의 세월'일지도 모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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