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에는 일시불로 지급되는 퇴직금이라는 것이 없다. 회사가 해고하거나 특별한 상황에서만 위로금(Abfindung)을 주기도 하지만 연금과는 성격이 다르다. 내 나이 또래의 은퇴자들은 67세가 되면 독일의 연금 공단(Deutsche Rentenversicherung)에서 퇴직연금을 받는다.
다행히 남편은 조기 수령이 가능해서 63세부터 연금을 받을 수 있지만, 나는 12년을 기다려야 한다. 11년이 아닌 12년 후에 연금을 받는 데는 내 출생의 비밀이 있다. 각자 직장 생활하면서 연금 공단에 넣어둔 돈이 매달 통장에 찍히기까지 우리는 적잖은 소득 절벽의 시간을 보내야 한다.
우리 둘이 받는 퇴직연금으로 노후를 보는 데 어려움은 없다. 문제는 연금 수령까지 소득 없는 기간이다. 일자리를 구하면 되겠지만, 나는 그럴 마음이 없다. 우리는 생계를 위한 노동으로부터 자유로워지기로 했으니까. 저축해놓은 돈을 생활비로 쓸 수도 있다. 하지만 곶감 빼먹듯이 은퇴자금을 동내긴 싫다. 대책이 필요했다. 연금 수령 때까지 어떻게 생활비를 조달할지 공부하다 '3 + 4 법칙'을 알아내고 눈이 번쩍 띄었다.
수많은 재테크 책과 유튜버들이 아파트 월세를 받아라, 꼬마빌딩을 사라, 배당금 많은 주식이 최고다, 리츠가 높은 수익을 제공한다고 조언하지만, 우리가 선택한 방법은 '4% 법칙'이다. 우리의 목적은 돈을 불리는 것이 아니다. 돈이 많아지면 좋겠지만, 부채 없고 파주 헤이리 가까이 내 소유의 집 한 채 있으니 더 바랄 것 없다. 햇살 좋은 아침에 남편과 손잡고 걸어가 헤이리에서 모닝커피 마시는 즐거움을 주식 시황 보느라 미루고 싶지 않다. 물론 경제 공부는 은퇴 후에도 반드시 해야 한다. 다만 나는 만족과 절제로 내 삶을 꾸려가고 싶다.
우리는 잃지 않는 투자로 은퇴자금을 보존하면서 연금 받기 전까지 생활비를 조달하고자 한다. 그래서 종잣돈의 복리 효과에 주목했다. 비교적 안정적이고 복리 효과를 얻을 수 있는 투자처로 세계 1등 주식과 S&P500 지수를 추종하는 ETF를 놓고 고민했다. 버핏을 비롯한 투자 구루들의 조언에 따라 달걀을 한 바구니에 담는 위험은 피하기로 했다. 우리 대신 튼튼한 바구니 500개에 투자금을 나눠 담아주는 S&P500 ETF에서 매년 인플레이션에 맞춰 4%를 인출해 생활비로 쓰기로 했다.
하지만 시장은 매년 똑같은 수익률을 가져다주지 않는다. 파이어족 사이에서 잘 알려진 이 4% 법칙은 수익금이 인출금보다 적으면 투자금이 쪼그라드는 위험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보완책으로 3년 생활비를 따로 현금으로 준비해 두기로 했다. 1970년부터 2021년까지 S&P500 지수가 2년 혹은 3년 내리 마이너스를 기록한 경우가 각각 한 번씩 있었기 때문이다. S&P500 ETF의 수익금이 인출금보다 낮은 해에는 4% 인출 대신 비축해놓은 현금으로 생활하고, 수익률이 높은 해에는 반드시 3년 치 생활비를 원상 복구하기로 했다.
우리는 3 + 4 법칙, 즉 3년 치 비상금과 매년 투자금의 4% 인출금으로 종잣돈을 까먹지 않고 소득 공백기를 뛰어넘으려 한다. 12년간 매해 인출금이 항상 4%는 아닐 것이다. 초기에는 인출금이 좀 더 필요하겠지만, 남편의 조기 연금과 이후 사적 연금마저 받게 되면 인출금이 줄어들 것이다. 그러다 통장에 내 연금이 찍힐 때가 오면 더 이상의 인출금은 필요 없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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