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부분의 독일 회사는 연말이 되면 각 개인의 실적에 대한 평가 회의(Mitarbeiterjahresgespräch)를 실시한다. 평가 회의는 상사와 1:1로 진행된다. 상사는 자기 상사와 또 평가 회의를 한다. 이러한 피라미드식 사원 평가가 1년에 한 번 실시된다. 회의는 12월 초에 시작되어 보통 3월 말이 돼서야 마무리된다.
회사마다 자체 제작한 평가서를 제공한다. 부하직원과 상사 모두 회의 전에 평가서를 작성한 후 이를 토대로 한 해 실적에 대한 평가, 능률을 올리기 위한 개선점, 내년 목표 설정, 그리고 연봉 등에 대해 의견을 나눈다.
나의 두 번째 직장 A에서의 사원 평가를 소개하겠다.
A 회사는 2,000여 명이 일하는 IT 회사다. 사원 평가서는 크게 협업, 업무 조직, 업무의 질, 업무량, 자발성, 그리고 관리 책임(이 항목은 상사에게만 해당한다)으로 구성된다. 각 항목은 다시 세부 항목으로 나뉘며, 0에서 8점 사이의 점수가 매겨진다. 한 항목이라도 0점을 받으면 당장 보따리 싸야 할지도 모른다. 8점을 받으면 사장이 회사 앞에 동상을 세워줄지도. 하지만 회사 창립 이래 0점도 8점도 없었다고 한다. 보통 4~6점을 받는다.
다음은 A 회사의 사원 평가 항목들이다.
협업(Teamwork)
- 목표 설정 시 동료들의 업무 상황을 고려하는가?
- 동료들과 같이 문제를 해결하려는 적극적 의지가 있는가?
- 도움과 지식을 주고 받을 자세가 되어있는가?
- 동료의 의견을 경청하고 합의를 통한 목표 달성이 가능한가?
- 동료의 성과를 자기 것으로 가로채지는 않는가?
- 팀의 이익을 고려하며 일하는가?
- 새 팀원을 잘 돕고 지원하는가?
- 갈등을 신속히 인지하고 해결할 능력이 있는가?
- 업무에 관련된 비평을 수용할 자세가 되어있는가?
- 토론을 혼자 장악하려 들지 않는가?
- 토론 시 건설적 해결을 지향하는가?
- 인신공격을 감정적으로 대응하는가?
- 팀 분위기를 썰렁하게 만드는 장본인인가?
업무 조직(Work Organization)
- 일정을 지키는가?
- 합의 사항을 지키는가?
- 업무를 신중히 처리하고, 문제 발생 시 신속히 대처할 능력이 있는가?
- 업무 흐름을 잘 파악하고 있는가?
- 유고 시, 동료들이 대신 업무를 수행할 수 있도록 평소 문서 정리는 잘해놓는가?
- 업무에 필요한 정보를 적극적으로 찾아 응용하는가?
- 결정에 따른 긍정적 혹은 부정적 결과를 예측할 능력이 있는가?
업무의 질(Quality of Work)
- 꾸준한 업무 수행 능력을 보이는가?
- 업무에 새로운 전문 지식이 사용되는가?
- 기존의 결과를 새 업무에 적용할 능력이 있는가?
- 업무 간의 연관성을 파악하여 효과적으로 일하는가?
- 성실한가?
- 위험 요소를 제때 파악하여 대처할 능력이 있는가?
업무량(Quantity of Work)
- 초과 업무를 할 자세가 되어있는가?
- 초과 업무를 할 때 감정적으로 대응하지 않는가?
- 초과 업무를 할 때 업무 능력이 떨어지는가?
자발성(Own-initiative)
- 변화를 쉽게 수용하고 대처하는가?
- 끊임없이 자기 계발을 하는가?
- 업무 결과를 책임질 자세가 되어 있는가?
관리 책임(Managerial Responsibility)
- 목표를 설정하고 관철할 능력이 있는가?
- 팀원들의 능력과 지식을 정확히 파악하여 적절한 업무를 부여하는가?
- 성과와 실책을 제대로 평가할 능력이 있는가?
- 팀원들 간의 갈등을 해결할 능력이 있는가?
- 팀원들이 성과를 이루도록 장려하는가?
- 지위를 남용하지는 않는가?
- 존경받는 지도력을 갖췄는가?
- 불필요한 경비를 줄이도록 노력하는가?
- 회사의 입장에서 경제적으로 생각하는가?
회의 전까지 부하 직원과 상사는 각자 이 평가서를 작성한다. 상사만의 일방적인 평가는 없다. 부하 직원도 자신을 평가하여 점수를 매긴다. 회의는 약 2시간 동안 진행되며 서로의 평갓값을 교환한다. 견해차가 커서 합의가 불가능하면, 이후 제삼자가 참여하는 회의가 주선된다. 그런데도 견해차가 좁혀지지 않으면 (이론적으로) 사장까지 만날 수 있다.
독일 회사에는 일괄적으로 치르는 승진 시험이 없다. 어쩌면 이런 사원 평가가 승진 시험보다 더 부담될 수도 있다. 작년보다 올해 평가 점수가 낮으면 일 년 내내 긴장하며 살아야 하니까.
나의 네 번째 회사 B의 사원 평가 방식은 상당히 독특했다.
B 회사는 스크럼 방식에 따라 팀장 없이 수평적으로 운영되었다. B 회사 역시 12월 초부터 사원 평가를 시작한다. 하지만 사원 평가서라는 것이 없다. 대신 세 명의 동료들에게서 받은 피드백을 평가 회의에 제출해야 한다. 동료 셋을 다 모아놓고 피드백을 얻는 것이 아니라 따로따로 피드백을 받는다. 굳이 같은 팀의 동료일 필요는 없다. 누구든 상관없다. 어떤 동료에게서 피드백을 받을지는 본인이 결정한다.
12월 초가 되면 서로 피드백을 주고받으려고 어수선하다. 피드백을 받고 싶은 동료 3명을 정하고, 의사를 타진한 후 각 사람과 30~40분 정도 만남을 갖는다. 정해놓은 항목은 없지만, 대략 일 년간의 협업, 업무 처리의 개선점, 탁월했던 점 등을 동료가 말하게 놔두고 본인은 플립차트에 토씨 하나 틀리지 않게 옮겨 적는다. 이때 원칙이 있는데 동료의 피드백에 대한 피드백은 금지다. 일 년 업무에 대한 피드백을 받고자 만나는 것은 회의가 아니기 때문이다. '참 좋아요', '참 잘했어요' 일색의 피드백은 곤란하다. 평가 회의에서 '내년에는 안 좋은 것, 개선점들을 받아오시라'는 잔소리를 듣게 될 테니 말이다.
이렇게 모은 3개의 피드백은 이후 평가 회의에서 쓰일 자료다. 평가 회의에는 부서 관리자와 팀의 스크럼 마스터가 참여한다. 회의가 시작되면 3명의 동료에게서 받은 피드백 플립차트를 벽에 붙이고 그 내용을 짧게 소개한다. 그것을 바탕으로 2시간 동안 평가 회의가 진행된다. 연봉 협상은 회의 말미에 한다.
동료들에게서 피드백을 모으기 전에 나는 내게 주는 피드백을 작성했다. 제출용은 아니지만 플립차트에 내가 하는 소리를 받아 적었다. 남의 의견도 중요하지만 나 자신의 평가도 중요하니까. 나중에 동료들의 피드백과 비교하면 아주 흥미로운 사실을 발견한다. 그들의 피드백이 내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협업을 중요시하는 스크럼 방식에 따라 한 주에 40시간 딱 달라붙어 일하는 동료들이 나를 드문드문 알 리가 없다. 동료들에게서 받은 피드백으로 일 년 업무 평가를 내리는 것은 상당히 정확하고 공평하며, 상사의 지위 남용을 막는 방법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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