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1년 가을, 남편과 나는 필사적으로 루르(Ruhr) 공업지역을 떠났다. 그곳에서 9년을 살았다. 우리들의 직장 때문에 정착한 곳이었지만 사는 내내 마음이 가지 않았다. 일단 사람이 너무 많았다. 축구 (정확히 말하면 FC Schalke 04 또는 Borussia Dortmund 축구팀) 아니면 할 얘기가 없었다. 그리고 개똥을 치우지 않았다. 이것만으로도 그 동네를 떠날 이유가 충분했다.
루르 공업지역은 여러 도시로 이뤄진 메트로폴리스다. 이에 속한 대표적인 도시가 에센(Essen), 보훔(Bochum), 도르트문트(Dortmund) 등이다. 2차 세계대전 후 철강과 석탄 산업의 발달로 튀르키예, 그리스, 이탈리아 등에서 온 외국인 노동자들이 이 지역의 탄광에서 일했다. 1960~70년대 대부분의 한국 광부들이 일했던 곳이기도 하다.

내가 살던 곳에는 폐광산이 많았다. 석탄을 캐 정제해 파는 것보다 수입산이 저렴하기 때문에 90년대 이후 대부분의 탄광이 문을 닫았다. 폐쇄된 탄광은 공원으로 조성되거나 상업 부지로 탈바꿈됐다. 교회 할머니 말에 따르면 탄광이 한창 가동되던 때에는 석탄 가루 때문에 빨래를 밖에 널지 못했다고 한다. 지금은 나무를 많이 심어 공기도 좋고 살기 좋아졌다지만, 내게는 살기 참 불편한 동네였다.
어디를 가든 차가 막히고 병원 예약은 두어 달이 걸렸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개똥을 치우지 않았다. 개똥 때문에 이사를 진지하게 고민하는 것이 이상해 보일 수 있겠다. 문제는 개와 개똥이 (흠, 이건 좀 문제일 수도 있겠다) 아니다. 그걸 치우지 않는 사람들의 마음가짐이다. 남의 집 앞, 길 한복판, 공원 잔디 속 촘촘히 싸놓은 개똥을 처리하지 않고 사라지는 사람들에게서 무슨 이웃에 대한 배려를 바라겠는가.
사는 동네가 맘에 안 든다고 직장을 그만두고 다른 동네로 이사 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물론 70~80km 외곽으로 나가면 강과 숲 가까이서 살 수는 있었지만, 출퇴근 때마다 미어터지는 고속도로 때문에 엄두가 나지 않았다.
마뜩잖은 동네에서 산 지 8년째로 접어들던 2020년 가을, 나는 부엌에서 까무러쳤다. 내가 쓰러지는 순간을 목격한 남편은 그만 일하고 다르게 살아보겠다는 나의 바람을 순순히 받아들였다. 직장이라는 족쇄를 떼어내기로 하니 '개똥 동네'를 떠나고 싶은 마음이 간절해졌다.
사실 나는 은퇴와 동시에 이사 대신 한국으로 영구귀국을 하고 싶었다. 30년이면 독일에서 참 많이도 살았다. 하지만 남편은 계속 일하고 싶어 했다. 한국에서 일자리를 찾으면 되겠지만 나는 남편과 한국에서 일 말고 하고 싶은 것이 너무 많다. 우리는 이러기로 했다. 내 소원대로 2023년 추석에는 둘이 손 꼭 잡고 한국에 가서 살기로. 그때까지는 1년 반 정도의 시간이 있으니 나는 은퇴 후 숨 고르는 시간을 갖고, 남편은 일을 계속하면서 자신의 은퇴를 고민해 보기로.
지금껏 우리가 사는 곳을 결정하는 요인이 직장이었다면, 이제는 우리가 살고 싶은 곳에서 살고 싶었다. 한국으로 터전을 옮기기 전에 우리는 남편의 고향인 바이에른(Bayern)주의 물 좋고 산 좋은 동네에서 원 없이 살아보기로 했다. 남편도 고향이 그리웠나 보다.
이사를 결심하고 실행에 옮기기까지 1년 남짓한 시간이 걸렸다. 그사이 남편은 회사와 100% 재택근무를 조율했다. 이사할 곳도 알아봐야 했다. 휴가 때마다 바이에른주에 살만한 동네를 물색하러 다녔다. 그러다 도나우(Donau)강이 흐르는 '도시인 듯 도시 아닌 듯'한 동네에 눈과 마음이 꽂혀 2021년 9월에 이사했다. 개똥 동네에서 620km나 떨어진 곳이다. 도나우 동네까지는 꽤 먼 거리라 이틀에 걸쳐 이사했다. 이사 당일 이삿짐센터가 늦게 일을 시작하는 바람에 이삿짐을 실은 트럭은 늦은 오후에서야 출발했다. 남편과 둘이서 청소를 마치니 저녁 9시가 되어가고 있었다. 이삿짐 인부들과 다음 날 아침 9시에 짐을 들이기로 약속한 터라, 우리는 요기도 못 하고 서둘러 도나우 동네로 떠났다.
늦은 시간이라 다행히 고속도로는 막히지 않았다. 문제는 릴레이처럼 나타나는 공사 구간이었다. 독일 고속도로를 속도제한 없이 달릴 수 있다는 말은 반만 맞다. 끝없이 이어지는 공사 구간 내내 60~70km 속도로 달려 도나우 동네에 도착했을 때는 새벽 4시경이었다. 꼬박 7시간을 운전한 남편과 입으로 운전한 나는 (교통사고 트라우마 때문에 나는 야간 운전을 못 한다) 예약해둔 집 근처 호텔에서 4시간을 죽은 듯이 잤다. 그렇게 우리는 개똥 동네에서 필사적으로 '야반도주'를 했다.
강이 흐르고 숲에 둘러싸인, 무엇보다도 길바닥에 개똥이 (거의) 없는 도나우 동네에서 산 지 어느새 2개월째로 접어든다. 감사한 하루하루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