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타임

개인 홈페이지를 만들다

선한 부자-이현주 2023. 2. 18. 17:36

역시 배움은 즐겁다.

지난 12월부터 넉달 과정인 'Webdesign & Javascript developer' 수업에 등록해 웹사이트 만들고 관리하는 공부를 하고 있다.  나는 서버, 데이터베이스와 관련된 일을 하던 Backend-developer였다. 웹사이트 쪽은 생소해서 전문 과정에 등록해 제대로 배워보기로 했다. 

 

이 공부를 시작하기 전 꽤 고민했다. 수십 년간 IT 기업에서 일하며 쌓아온 경력과 지식을 은퇴 후 개인의 영역으로 가져와 써먹으려니 체급이 맞지 않았다. 다운사이징 방편으로, 내가 읽은 책들을 관리해주는 도서 관리 시스템을 만들려다 관뒀다. 무료로 쓸 수 있는 훌륭한 앱이 넘쳐난다. 그거 쓰면 된다.  

'유투브에서 강의를 해볼까?'

흠... 이건 내 혀가 짧아서 가오가 안 선다. 이 생각은 빨리 접었다.

'내가 쓴 글에서 반복되는 문장이나 단어를 찾아내 수정 제안을 해주는 AI 툴을 만들어볼까?'

오호~ 이건 내가 전공한 자연언어처리와 개발자로 일한 노하우를 잘 버무리면 재밌을 것 같다. 단, 한국어 공부가 선행되고 문장 패턴을 부지런히 모아야 한다. 이건 장기 프로젝트로 찜 해뒀다.

 

이런저런 고민 끝에 나는 홈페이지를 만들어 보기로 했다. 무엇을 내다 팔지 아직 잘 모르지만, 일단 시장은 만들어놓아야겠다 싶어서다. 시장에서 사고파는 일 외에도 군것질하며 구경하는 즐거움을 무시할 수 없듯이, 내가 가진 아이디어와 자원을 상판에 올려놓으면 구경꾼들이 모여들지 않을까? 그래, 나의 오일장인 홈페이지를 만들어보자!

 

웹사이트 개발 공부를 시작했다는 말에, "나는 그만 열심히 살기로 했다", 라고 큰소리쳐놓고 뭘 또 배우냐며 지인들이 타박했다. '배우고 익히니 또한 즐겁지 아니한가?'라고 공자님도 말씀하셨잖는가. 은퇴한 지금, 배움은 내게 즐거운 놀이 중 하나다. 배움이 강박이었던 때는 지나갔다. 

 

몇몇 스크립트 언어는 개발 앱을 테스트할 때 사용해봤지만, Javascript는 이번에 처음 다뤄본다. Javascript 문법은 C와 Kotlin을 잘 섞어 놓은 느낌이다. 프로그래밍 외에도 웹사이트를 제작하는 일에는 색과 디자인 감각이 필요하다. 공간 배치, 색상의 조화, 과하지 않으나 밍밍하지 않게 등등. Backend 개발자의 일이, 날이 시퍼렇게 선 칼로 생선 살을 바르는 작업이라면, 웹사이트 만드는 일은 하염없이 주물러대는 양념불고기 만드는 느낌이다. 6주 배우고 2주간 조몰락거려 만든 나의 홈페이지다. www.hyotic.net

 

일단 독일어로 만들었다. 30년간 독일에서 살다 보니 할 말도 많고 쓸 내용도 많다. 시제는 과거다. 내가 독일 어느 직장에서 무슨 일을 했으며 어떤 업무 능력을 갖췄는지에 대한 이야기가 주를 이룬다. 나와 함께 홈페이지 제작을 공부하는 젊은 사람들의 사이트는 아주 단순하다. 인스타 감성이다. Illustrator로 직접 디자인한 간판으로 홈페이지를 덮어버린다. 시각적이고 생동감 넘친다. 글은 거의 없다. 내 사이트는 말 많은 오십 대 감성이다.

 

이제 한국어 홈페이지를 만들어보련다, 인스타 감성으로. 줄 맞춰 꽉 채우지 말고, 여백이 주는 편안함이 느껴지는 시골장터로 만들고 싶다. 은퇴 후의 소소한 삶을 이 오일장 좌판 위에 얹어놓을 생각이다. 여기에서 시제는 현재와 미래다.

 

ⓒ 2023. 이현주, 나의 홈페이지 지붕