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반전 이야기

기억에 남는 중국 여행

선한 부자-이현주 2022. 4. 21. 21:45

요즘 도나우(Donau) 동네는 터져 나오는 봄꽃들로 알록달록하다. 서재 창가 너머로 보이는 하얀 자작나무 줄기에는 머리를 땋아놓은 듯한 연한 꽃들이 길게 매달려 있다. 눈길이 머무는 봄 풍경이지만 나는 오싹한다. 자작나무 꽃가루 알레르기 때문이다. 봄볕이 좋아 잠시 외출이라도 하면 눈이 따끔거리고 목 안이 붓는다. 눈 주위가 벌게지고 불편해지는 이맘때가 되면, 나는 그해의 중국 여행을 떠올린다.

 

2007년 3월 초 남편과 함께 상하이(上海)와 핑야오(平遥)를 여행했다. 핑야오는 명·청나라 때 금융 중심지였다. 베이징(北京)에서 비행기를 타고 타이위안(太原)에 도착해 하룻밤을 묵었다. 다음날 관광차로 핑야오로 떠날 예정이었다. 비록 하룻밤 거쳐 가는 도시지만 잠시 둘러보려고 호텔을 나서니 안개가 낀 듯 뿌옇고 사위는 어둑했다. 길을 나선 지 얼마 되지 않아 눈이 따끔거리기 시작했다. 급기야 자작나무 꽃가루를 눈에 뿌린 듯 통증이 거세졌다. 처음에는 꽃가루 알레르기 때문이라고 생각했는데, 목 안이 멀쩡하고 재채기도 하지 않았다. 우리의 눈물을 쏟게 만든 것은 석탄 연기였다. 석탄으로 난방을 하는 탓에 안개 낀 듯 시야가 뿌옇고 숨쉬기가 힘들었다. 남편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호텔로 줄행랑을 쳤다. 거울에 비친, 눈가가 벌겋게 부어오른 우리는 한 쌍의 판다였다.

 

다음날 핑야오에 오후 늦게 도착했다. 중국 대도시를 벗어나면 영어는 무용지물이다. 남편의 갈고닦은 중국어가 빛을 발하는 순간이다. 그들이 중국인이라 생각했을 나는 입도 뻥긋 못하고, 옆에 있는 서양 남자가 자신들의 말을 이해하니 난리도 그런 난리가 없다. 옆집 앞집 가게 주인들과 손님들까지 다 와서 한마디씩 거든다. 나 빼고 모두 신났다.

 

3월 초라 아직 추운 탓에 핑야오에는 관광객이 거의 없었다. 도시는 관리되지 않아 오히려 옛 모습을 엿볼 수 있었다. 도시가 통째로 유네스코 세계유산인 핑야오는 발길 닿는 대로 들어서는 골목들이 박물관 그 자체다. 오래된 골목길을 어슬렁거리다 봄볕이 잘 드는 야외 음식점에서 마파두부를 시켰다. 붉은 손등이 쩍쩍 갈라진 여자아이가 수줍게 가져다 놓은 마파두부는 기막히게 맛있었다. 엄지척!

 

사실 마파두부를 주문하면서 조마조마했었다. 전날 남편과 내가 식은땀 나는 일을 겪었기 때문이다. 남편이 예약한 온돌방 있는 민박집은 핑야오 시내 한복판에 있었다. 고성 핑야오와 잘 어울리는 민박집에서 이른 저녁을 먹고 서둘러 시내 구경을 나섰다. 들떠 돌아다닌 지 얼마 되지 않아 배가 요동치기 시작했다. 안 되겠다 싶어 숙소로 돌아가자고 하니 남편이 격하게 동의했다. 둘 다 저녁 먹은 것이 탈이 났던 모양이었다. 남편과 앞서거니 뒤서거니 민박집으로 내달렸다.

'흠, 이거 어디서 봤더라...'

타이위안에서 판다 눈을 하고 호텔로 줄행랑을 치던 우리들의 모습이 떠올랐다.

 

또 탈이 날까 하는 걱정은 기우였다. 검정콩으로 만든 매콤한 마파두부의 힘으로 견고한 성벽에 오르고, 14세기에 사용됐던 동전과 어음이 전시된 옛 은행 터도 구경했으니 말이다.

 

핑야오를 떠나 상하이에 오니 근대에서 현대로, 시골에서 서울로 온 느낌이었다. 일단 크루아상과 커피로 도시 문명을 즐긴 후 배를 타러 나섰다. 저녁 7시부터 운행하는 바람에 시간이 많이 남았다. 우리는 인근에 있는 한 식당으로 들어갔다. 음식을 직접 골라 담을 수 있는 곳이었다. 올망졸망 예쁜 딤섬들을 접시에 담아 자리로 돌아오다가 묘한 광경을 목격했다. 행색이 추레한 남자가 종업원들 몰래 빈 봉투를 훔치고 있었다. 이리저리 주위를 살피더니 손님들이 남기고 간 음식을 훔친 봉투에 잽싸게 쓸어 담았다. 이를 본 종업원이 달려와 식탁을 정리했다. 종업원들이 소리 내서 쫓아내지는 않았지만, 음식을 주워 담지 못하게 하려는 의도는 느껴졌다. 그들에게는 익숙한 일인 듯했다.

 

뒤늦게 한 접시 가득 채워 자리로 돌아온 남편에게 내가 본 것을 들려줬다. 남자는 종업원들 눈치 때문에 밖에서 기다리다 손님들이 나오면 후다닥 들어와 남긴 음식을 쓸어 담았다. 남자가 다시 식당 안으로 들어왔지만, 이번엔 종업원이 빨랐다. 식탁은 눈 깜짝할 사이 치워졌다. 이를 본 남편이 남자에게로 가서 말을 걸었다. 둘이 잠시 대화를 나누더니 남자는 다시 밖으로 나가고 남편은 되돌아왔다.

"왜 그냥 와? 저녁 사주려고 일어난 거 아니었어?"

"친구가 밖에 있대. 데리고 온대."

그렇지, 친구라면 이래야지! 남자가 또 다른 남자와 함께 식당 안으로 들어서자 남편이 그들에게 다가갔다. 두 남자가 음식 고르는 것을 옆에서 기다린 후 계산을 마친 남편이 자리로 돌아왔다. 우리는 그제야 식어버린 음식을 먹었다. 좀 떨어진 식탁에서 두 남자도 종업원들 눈치 보지 않고 편한 식사를 했다.

밥을 먹고 음식점을 나와 서너 걸음을 옮기는데 누군가 우리를 다급히 불러 세웠다. 그 남자였다. 꽤 많은 말을 한 후 예를 갖춰 포권 인사를 하고는 다시 음식점 안으로 들어갔다.

"뭐래?"

"며칠 전에 가족과 함께 일자리 구하러 상하이에 왔대. 굶고 있는 아내와 아이들에게 가져다주려고 거기서 음식을 담고 있었대. 고맙대. 평생 안 잊겠대."

까짓 식은 밥 좀 먹으면 어때, 마음이 배부른데. 일자리도 구하고 크게 성공해서 우리가 베푼 밥 한 끼가 남자를 통해 다른 이들에게 흘러가길 바랐다.

 

이후로 중국을 몇 번 더 다녀왔지만, 2007년 봄 여행이 오래 기억에 남는다. 남편과 두 번이나 앞서거니 뒤서거니 줄행랑을 치고 포권 인사를 건네던 남자를 만났던 그해의 여행이, 창문 너머 날리는 자작나무 꽃가루에 묻어 소환되는 나른한 봄날이다.

 

ⓒ 2022. 이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