찬란한 유산
24년째 쓰는 가계부는 우리 집 살림의 빅데이터다.
이 빅데이터로 여러 가지 통계를 낼 수 있다. 성경에 "물질이 있는 곳에 네 마음도 있다."라고 한다. 지난 세월의 지출을 보면 남편과 나의 마음이 어디에 가 있었는지 알 수 있다.
주택구입 같은 일회적인 지출과 투자용 저축을 제외하고, 23년간 꾸준히 지출된 항목 중에서 순위를 매겨봤다. 2022년 올해의 지출 비용은 포함하지 않았다.
1위는 주(住)다. 집 없이 산 세월도 있고 내 집에서 산 날도 있다. 월세든 관리비든 독일에서 집과 관련된 비용이 높다. 놀랍지 않은 결과다.
2위는 선교 및 구제다. 복음을 전하는 일과 곤경에 빠진 사람들을 위해 내어 준 돈이 입는 데(衣) 쓴 것보다 4배가 많고 먹는 데(食) 지출한 돈보다 2배가 많다. 1위와 단지 0.8% 차이가 난다.
3위는 나눔 및 선물이다.
정리하면 1위는 우리를 위해서, 2위와 3위는 남을 위해 지출한 돈이다. 남을 위해 쓴 2, 3위를 합하면 1위인 거주 비용을 훌쩍 넘어선다. 뿌듯하고 감사하다. 지난 세월 남편과 나의 마음은 어려운 처지에 놓인 사람들을 모르는 체하지 않았다. 숫자가 말해준다. 거기에 우리 마음이 있었다고.
나의 욱하는 기질은 아버지를 닮았다. 저축 먼저 하고 나머지 돈으로 사는 법은 엄마한테 배웠다. 남의 어려움을 돌아볼 수 있는 마음은 아버지와 엄마에게서 물려받았음이 틀림없다.
나는 부모님의 선한 삶을 안다. 엄마는 내가 초등학교 다닐 때 빠듯한 살림에 4남매를 키우면서도 나의 동급생인 정아의 도시락을 일 년 내내 싸주셨다. 중학교에 다닐 때는 점심 시간에 방 하나를 길거리에서 장사하는 분들께 내어주셨다. 당시 우리는 시장 입구에 있는 상가 딸린 집에서 살았다. 토요일에 오전 수업만 하고 돌아오면 상가 쪽으로 난 방에서 낯선 아줌마들이 점심을 먹고 있었다. 시장 입구에 보자기를 깔고 물건을 팔던 분들이었다. 부모님은 온종일 추위에 떠는 아줌마들이 돌덩이같이 딱딱하게 굳은 도시락을 길바닥에서 먹는 것이 안쓰러워 방을 내주셨다. 따뜻한 방에서 밥이라도 편히 드시라며.
얼마 전 통화 중에 아버지가 유산 이야기를 꺼내셨다. 자식들에게 다 주지 않겠다고 하신다. 당신 재산의 일부는 배고프고 의지할 데 없는 아이들을 위해 쓰라신다. 일곱 살 어린 나이에 아버지를 잃고 객지에서 떠돌며 배곯았던 때를 잊지 못하신다. 주린 배를 채우려고 어려서부터 안 해본 일이 없다는 내 아버지는 남의 곤경에 마음을 보태고 손을 내밀었다.
자식들에게 받는 용돈에서 엄마는 교회에 헌금을 하시고 아버지는 다섯 명의 동남아 아이들을 후원하신다. 15년째 다섯 아이의 생명을 살린다고 흐믓해하신다. 후원하는 아이들에게서 받는 편지와 정기 간행물을 차곡차곡 모으신다. 당신의 성경책과 함께 자식들에게 유산으로 남기시겠다면서. 절약과 구제 그리고 신앙, 내 부모님의 찬란한 유산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