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프타임

그 아이, 정아

선한 부자-이현주 2022. 3. 31. 02:49

드디어 밤을 꼴딱 새우고 봤다.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을.

그리고 그 아이, 정아를 기억해냈다.

 

<동백꽃 필 무렵>은 오래전 언니가 꼭 보라던, 생각할 거리가 많고 재밌다며 추천했던 드라마였다. 하지만 보지 않았다. 한번 시작하면 중간에 끊지 못하고 밤새고 볼 테고, 출근해서도 다음 내용이 궁금해 일이 손에 잡히지 않을테니까. 주중에는 회사 일로, 주말에는 밀어뒀던 집안일 하느라 <동백꽃 필 무렵>은 내게서 금세 잊혔다.

 

자발적 은퇴가 시작된 올해 초부터 더 이상 회사에 매이는 시간은 없지만 '드라마나 보고' 있기는 싫었다. 그러다 얼마 전에 허리 디스크가 터져 남편이 병원에 입원했다. 혼자 있는 집에 사람 목소리가 필요했다. 불현듯, 문득, 느닷없이 <동백꽃 필 무렵>이 생각났다.

 

드라마를 보는 내내 나는 초등학교 때 우리 반 아이, 정아(이름이 정화일 수도 있겠다)를 생각했다. 정아는 '고아원 아이'였다. 내가 다니던 초등학교 근처에 보육원이 있었다. 우리 반에도 그 보육원에서 오는 여자아이가 둘이나 있었다. 싹둑 자른 앞머리에 숱 많은 단발머리를 한 정아는 그중 한 명이었다. 정아는 드라마 초반의 동백이처럼 고개를 숙이거나 시선을 비켜 말을 했다. 들릴 듯 말 듯 한 목소리로 고개를 숙이고 몸을 꼬며 말하던 정아가 드라마 속 동백과 겹쳤다.

 

많은 시간이 흘렀는데도 정아를 기억하는 건 엄마가 싸준 정아의 점심 도시락 때문이다. 학년 초 조회 시간에 담임이 물었다. 누가 두 아이의 점심 도시락을 싸올 수 있는지. 배려라고는 병아리 눈곱만큼도 없던 담임에게, 그 말을 듣고 앉아있던 두 아이의 마음 따위는 전혀 중요하지 않았을 것이다. 급식도 없던 때였다. 아마도 보육원에서 점심 도시락을 챙겨 보내지 않는 듯했다.

 

빠듯한 살림에도 엄마가 정아의 도시락을 싸주겠다고 나섰다. 자식 넷과 정아의 도시락을 싸느라 엄마의 아침은 분주했다. 나는 일 년 동안 정아의 도시락과 내 것을 양손에 들고 학교에 오갔다. 아침에 내가 정아의 책상 옆에 도시락 가방을 놓아두면, 정아는 점심시간이 끝나갈 무렵 빈 도시락이 담긴 가방을 내 신주머니 걸이에 슬며시 걸어두었다. "맛있게 먹었어?" "응, 고마워." 같은 생기발랄한 멘트는 피차 없었다. 빈 도시락 가방을 돌려줄 때 정아는 무척이나 수줍어했다. 말을 걸기가 나 역시 어려웠다.

 

정아와 나는 '아는 사이'였다. 내가 멀리해서가 아니라, 정아는 보육원 아이들하고만 지냈다. 소풍 때 엄마는 같이 먹으라며 김밥을 싸주셨지만, 정아는 내가 내미는 김밥과 과자를 받고 사라져 버렸다. 자식이 많아서 그랬는지 엄마가 내 소풍에 따라온 기억은 없다. 정아처럼 나 역시 소풍 때 엄마 없이 밥을 먹어야 했지만, 그저 아는 사이였던 우리는 각자의 친구들과 시간을 보냈다. 내 기억으로, 반 아이들이 정아를 왕따 시키지는 않았다. 보육원 아이라고 막 대하지도 않았다. 그저 물과 기름처럼 섞이지 못했다. 학년이 바뀌고 정아와는 다른 반이 되었다. 나는 더 이상 정아의 도시락 심부름을 하지 않았다. 그리고 정아라는 아이도 내 머리에서 곧 지워져 버렸다.

 

오랜 세월 잊고 있던 어린 정아를 드라마 <동백꽃 필 무렵>을 보며 다시 만났다. 동백을 보며 정아는 수줍은 아이가 아니었음을 알았다. 그것은 수줍음이 아니라 그늘진 쭈뼛거림이었다. 비스듬히 비껴 난 시선은 편견의 무게를 감당하지 못해서였다.

 

동백의 다른 이름인 정아는 편견과 차별의 세상에서 어떻게 커갔을까? 부디, "정아 씨, 니 잘났어요. 나 너를 믿어요."라고 칭찬하며 응원하는 '황용식'을 만나 기적 같은 이번 생을 살고 있길 진심으로 소망해본다.

 

ⓒ 2022. 이현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