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사람들은 정말 쌀쌀맞을까?
독일에 사는 외국인들에게 독일 사람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느냐고 물으면 대부분 '쌀쌀맞다', '차갑다'라고 말한다. 나도 그렇게 생각할까? 만약 내가 '그 사람들'을 만나지 않았다면 이 선입견을 깨는 데 오랜 시간이 걸렸을지도 모르겠다.
에피소드 하나
아주 오래된 이야기다. 따사로운 햇살이 비취는 5월 중순 어느 토요일, 누군가의 갑작스러운 제안으로 친구들과 당일치기로 라인(Rhein)강을 따라 자전거 여행을 했다. 계획 없이 떠나는 여행이 주는 설렘 가득, 우리는 제각기 끌고 나온 고물 자전거에 올라탔다. 라인 강변은 조깅하거나 산책하는 사람들, 그리고 우리처럼 자전거를 타는 사람들로 무척이나 붐볐다. 앞서거니 뒤서거니 신나게 자전거를 타고 있는데 일행 중 한 명의 자전거에 문제가 생겼다. 바퀴가 터져 버린 것이다. 우리 중 아무도 수리 장비를 갖춘 사람이 없었다. 꽤 달려온 길이라 자전거를 끌고 되돌아가야 할 그 친구나, 아무 도움도 줄 수 없는 우리나 난감하긴 매한가지였다. 그때 자전거 하이킹을 하던 일행이 우리 앞에 멈춰 섰다. 자초지종을 들은 무리 중 한 남자가 자신의 자전거에 달린 가방에서 장비를 꺼내 터진 바퀴를 때우기 시작했다. 손이 더러워지는 것에 아랑곳하지 않고 바퀴를 때우던 중년의 아저씨. 독일 사람들은 쌀쌀맞다는 나의 선입견을 최초로 깨버린 고마운 사람이다.
에피소드 둘
역시 학생 때의 일이다. 방학 때 뷔르츠부르크(Würzburg) 대학에서 독문학을 공부하던 친구와 선배를 방문했다. 다음 날이 일요일이라 기독교 신자인 우리 셋은 교회에 가려고 버스에 올라탔다. 하필이면 그 많던 잔돈이 그날만 없었다. 나는 버스 기사에게 50마르크(Mark, 유로가 도입되기 전 독일 화폐) 지폐를 내밀었다. 기사는 잔돈을 요구했다. 우리 중 아무도 잔돈이 없다는 말에 기사는 시동을 끄며 퉁명스럽게 말했다.
"내게 거스름돈이 없습니다. 손님을 거부할 수는 없고, 그렇다고 공짜로 태울 수도 없으니 시동을 끕니다. 내릴지 말지 당신들이 결정하세요."
갑자기 시동이 꺼지자 버스 안이 술렁였다. 황당한 마음에 서둘러 버스에서 내리려 하자 중간쯤 앉아있던 중년의 아줌마가 우리를 불러 세웠다.
"무슨 일인가요?"
우리의 설명을 들은 아줌마는 내 버스비를 지불하고는-선배와 친구는 그 도시의 한 달 교통카드를 가지고 있었다- 기사에게 한마디 툭 던졌다.
"그렇다고 시동을 끄면 됩니까? 갑시다!"
버스 기사가 다시 시동을 걸자 아줌마는 자리로 돌아가 앉았다. 시동 꺼진 것보다 더 황당한 사건에 말을 잃고 서 있던 나를 밀치고 선배가 아줌마에게 다가갔다.
"도움을 주셔서 감사합니다. 연락처를 주시면 버스비를 돌려 드리겠습니다."
거듭 사양하며 괜찮다던 그 아줌마는 이렇게 상황을 종료했다.
"이렇게 하지요, 우리가 우연히 거리에서 마주치면 커피 한 잔 사주세요."
이 아줌마의 말을 나는 지금껏 보석같이 마음에 담고 있다. 그 도시에서 공부하지 않은 나로서는 아줌마를 다시 볼 기회가 없었다. 선배나 친구 역시 그 도시를 떠날 때까지 아줌마를 만날 수 없었단다. 이제 그 버스비를 갚는 길은 나처럼 곤경에 처한 사람들을 돕는 것이리라. 얼굴도 생각나지 않는 아줌마. 내가 살면서 두고두고 꺼내 보고 싶은 기억을 선물한 고마운 사람이다.
30년간 독일에 살면서 수많은 고마운 사람들을 만났다. 한국 갈 때면 식구들과 먹으라며 케이크를 구워오던 크리스타. 텃밭에 심은 산딸기로 여름마다 잼을 만들어 주던 리타. 멀리 살던 자식들 대신 시아버지 임종을 지켜줬던 한스 아저씨네. 작년 가을 직접 농사지은 호박 한 덩이를 나눠준 아홉 살 난 이웃집 꼬마 야콥.
물론 못돼먹은 사람들과의 기억도 적잖다. 그건 독일 사람이라서가 아니라 개개인의 인성 문제다. 못돼먹은 몇몇 한국 사람들처럼 말이다. 관공서 공무원들의 오만과 불친절은 독일 사회에서 조롱과 농담의 단골 소재다. 손님이 아니라 파는 사람이 왕이고, 소비자가 아니라 기업이 갑이다. 오죽하면 독일은 '서비스의 사막(Servicewüste)'이라는 말이 있을 정도다. 그렇다고 이 모든 것이 독일 사람들의 쌀쌀맞은 근성 때문이라고 잘라 말할 수 없다. 허술한 직원 교육과 시스템의 문제다.
독일 사람들은 자신들만의 행동양식과 기질을 가지고 있다. 그들이라고 왜 정이 없겠는가. 다른 토양에서 자란 사고의 틀로 그들의 정서를 읽으려면 오해하기에 십상이다. C언어로 짠 코드를 Java 컴파일러에 돌리는 격이다. 노란 셀로판지로 세상을 보면 나뭇잎의 푸름과 파란 하늘도 누렇게 보이는 것처럼 말이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