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반전 이야기

칼린 이야기

선한 부자-이현주 2022. 3. 11. 16:05

시아버지 칼린이 들려준 이야기다.

"마을 한가운데 있던 성당 첨탑에서 12시가 되면 종소리가 울려 퍼져. '정오구나. 점심 먹을 때가 됐네.'라고 생각했지."

 

칼린은 독일 나치 정권 때 소년병으로 징집되었다. 독일이 패전한 후 프랑스의 포로수용소에 갇혀 지냈는데 늘 배가 고팠다. 전쟁포로로 농가에서 강제 노역을 했는데, 오히려 그게 더 나았다. 일은 고되어도 배는 곯지 않았으니까. 뼈가 바스러지게 일하고 있으면 뎅그렁~ 뎅그렁~ 종소리가 울려 퍼졌다. 시계는커녕 변변한 밭일하는 장비도 없이 일하던 칼린에게 종소리는 12시가 되었으니 곧 밥 먹을 수 있음을 의미했다. 노역하던 농가에서 점심밥만큼은 넉넉하게 줬다.

 

전쟁을 겪고 포로 때의 배고픔 때문이었을까? 칼린은 밥을 남기지 않았다. 식당에서 남은 음식은 포장해 집으로 가져왔다. 배곯을 염려가 없을 듯한 요즘 세상에 칼린은 지하실 방에 비상식량을 빼곡히 쌓아 두었다. 남편과 갈 때마다 날짜가 간당간당한 것들을 챙겨 오며 '제발 그만 사서 쟁여두시라' 해도 소용이 없었다. 우리가 치운 자리는 다시 채워졌다.

 

ⓒ 2022. 이현주
칼린의 지하 창고 Erlangen/Germany

 

어렸을 때 '독일 사람들은 셋은 모여야 담뱃불 성냥을 켠다.'고 종종 들었다. 설마 했는데 진짜다. 칼린이 그랬다. 칼린은 카페에서 가져오거나 기념품으로 받은 공짜 성냥을 서랍에 수북이 쌓아두었다. 라이터를 살 필요가 없었다. 성냥 하나를 켜려면 불붙일만한 것들을 옹기종기 모아놓고 하나씩 붙였다. 달랑 초 하나 때문에 성냥을 켜면 타다 남은 꽁지를 서랍에 넣어 두었다 재사용했다.

 

뭐하나 허투루 버리는 것이 없었다. 설거지한 물은 양동이에 모았다가 정원에 부었다. 폐지는 알맞게 잘라 메모지로 사용했다. 빈 아이스크림 통은 깨끗이 씻어서 차곡차곡 쌓아두었다. 받은 편지 봉투도 재사용했다. 신문 기사는 오려두었다 재사용한 편지 봉투에 넣어 일주일에 한 번꼴로 우리에게 보냈다. 칼린에게서 새 봉투에 든 편지를 받는 날은 내 생일이거나 아주 특별한 날이었다.

 

칼린은 스프링거 출판사(Springer Verlag)에서 30여 년 넘게 근무했다. 매달 2,800유로 정도(약 370만 원) 연금을 받으면서도 혀를 내두르게 근검했다. 평생 절약하면서 살았지만 자식들에게 책만큼은 아끼지 않았다. 동급생들은 선배들이 쓰던 교과서를 물려받았지만, 남편은 칼린이 사준 새 교과서로 공부했다. (독일 학교에서 새 교과서는 자비 부담이다. 대신 중고 교과서는 무상이다. 무상으로 사용한 책은 다시 반납해야 해서 필기는 금지다.)

 

칼린은 클래식을 즐겨 들었다. 바흐(Bach)와 헨델(Hendel)을 레코드판으로 듣는 것을 좋아했다. 음악을 들을 때면 검지를 허공에 휘적이며 박자 맞춰 흥얼거렸다. 시댁 거실에 있던, 건반이 누렇게 변한 피아노로 내가 찬송가를 치면 시어머니가 어느새 의자를 가지고 와 내 옆에 앉아 따라 불렀다. 거실 옆 서재에 있던 칼린도 슬그머니 문을 열어둬 아내와 며느리의 노래에 귀 기울이곤 했다.

 

칼린은 2017년 1월에 잠들었다. 병약했던 아내가 죽고 자식들마저 다 떠나버린 3층 집을 혼자 관리하다가 사다리에서 떨어졌다. 수술 후 중환자실에서 코마 상태로 일주일을 누워있다 끝내 깨어나지 못했다. 칼린 나이 91세였다. 수술 직후 400km를 달려가 중환자실에서 마주한 칼린의 모습에 억장이 무너졌다. 주렁주렁 달린 의료기에 의식 없이 누워있던 칼린이 딱 한 번 반응했다. 간호사가 남편의 이름을 불렀을 때였다. 공기 중에 퍼진 막내아들의 이름에 칼린의 눈썹이 미세하게 꿈틀거렸다.

'듣고 계시는구나. 아시는구나, 막내아들이 지금 여기 있는 거.'

나는 칼린의 머리맡에 그가 즐겨 듣던 바흐와 찬송가를 들려주었다. 그리고 말했다.

"고맙습니다. 독일에서 내 아버지가 돼주시고, 울타리가 돼주시고, 사랑해주셔서 정말 고맙습니다."

 

남편과 나는 칼린의 임종을 지키지 못했다. 오늘을 넘기기 힘드시겠다는 의사의 전화를 받고 다시 먼 길을 전속력으로 달려갔지만, 칼린은 우리를 기다려주지 않았다. 이제, 낮 12시 어디선가 뎅그렁~ 뎅그렁~ 종소리가 울리면 노역하며 점심밥을 기다리던 칼린을 떠올린다. 그와 가족으로 함께 했던 시간을 추억한다.

 

ⓒ 2022. 이현주
칼린의 서재 Erlangen/Germa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