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고 후반전

중국을 사랑하는 남자

선한 부자-이현주 2022. 3. 10. 19:27

중국을 사랑하는 남자, 내 남편이다.

오죽하면 '내가 좋아, 중국이 좋아?'하고 물어볼 정도다. 어찌나 기묘하게 빠져나가는지 아직 답을 듣지 못했다. 우리는 본(Bonn) 대학교 학생 식당에서 처음 만났다. 남편은 90년도 초에 중국에서 3년 유학했고, 이후 본 대학에서 중국어를 전공했다. 지금은 출판사에서 일하지만 직업경력 8할은 중국 무역과 금융에 관련된 일이었다.

 

남편이 무역 회사에 다닐 때 1년에 서너 번은 중국으로 출장을 갔다. 남편의 일정이 끝날 즈음이면 나도 중국으로 날아가 둘이서 여행을 하곤 했다. 한 번은, 남편의 거래처에서 내가 중국에 와 있는 것을 알고 저녁 식사에 초대한 적이 있었다. 식사 내내 대여섯 명의 거래처 직원들과 능숙하게 중국어로 대화하는 남편이 참 멋져 보였다. 똑똑한 아들 바라보는 엄마 마음이 이런 걸까?

 

베이징(北京)에서의 일이다. 남편이 일하는 동안 나는 혼자서 시내 구경을 했다. 돌아다니다가 한 카페에서 커피와 샌드위치를 시켰다. 선불이었다. 먹고 일어서는데 직원이 영수증을 내밀며 계산하라고 했다. 나에게 커피와 샌드위치를 가져다주고 선불이라며 돈을 받아 간 바로 그 직원이었다. 조금 전까지 나와 영어로 서툴게 대화하던 사람이 중국어로 나를 몰아붙였다. 점장인 듯한 여자가 와서 미리 계산했다면 영수증을 보여달란다.

'아뿔싸, 영수증을 안 받아놨구나!'

꼼짝없이 다시 돈을 내야 하는 상황이었다. '얼마 안 되는 돈, 그냥 줘버릴까?' 생각했지만 괘씸했다. 카페 전화로 남편에게 전화를 걸었다. 내 울분을 토해내자 남편이 점장을 바꿔 달라고 했다. 남편과 중국어로 통화를 마친 점장은 그 직원을 매섭게 노려보고는 나더러 가도 좋다고 했다. 사과는 못 받았지만 나 대신 남편이 항의했으니 그 정도면 됐다. 나는 정말 모르겠다. 남편이 중국을 왜 사랑하는지.

 

중국 여행 중에 어느 가게든 남편과 같이 들어서면 나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그들 눈에 나는 중국 여자로 보일테니까. 내가 영어로 말하면 기분 나쁜 듯 쳐다보고 계속 중국어로 얘기했다. 그때까지 말 없이 상황을 즐기던(?) 남편이 중국어로 끼어들었다. 반전이었다. 가게 안 사람들이 반색하며 우리 주위로 모여들었다. 남편의 유창한 중국어에 홀린 사람들은 물건값도 후려쳐주고 심지어 머리도 공짜로 잘라줬다. 하긴 말 못 하는 '중국 여자'와 말 잘하는 서양인의 조합이 흔한 건 아니니까.

 

중국 말고 남편이 사랑하는 것이 또 있다. 책이다. 남편이 사랑하는 두 가지, 중국과 책이 만나니 우리 집 책장은 온통 중국 관련 책으로 빽빽하다. 책장의 8할은 남편 책이고 그중의 5할은 중국에 관한 책이다. 중국의 역사, 문화, 정치, 경제, 소설 등 분야를 가리지 않고 꽂혀있다. 심지어 중국어로 된 그림책까지 있다. 성경도 중국어로 읽는다. 우리 집에 뒹굴어 다니는 폐지 뒷면에는 남편이 공부하며 끄적거린 한자가 빼곡하게 적혀있다. 이쯤 되면 궁금해진다. 남편은 왜 한국 여자랑 결혼했을까?

 

남편은 내가 중국인에 대해 '시끄럽다', '막무가내다'라고 말하는 것을 싫어한다. 지극히 겉모습만 본다는 것이다. 중국 사람과 그들의 말로 대화하면 다른 모습이 보인단다. 정이 많고 속이 깊단다. 언어를 모르면 문화와 사고를 이해하는 데 한계가 있다는 얘기다. 그래, 맞다. 중국을 독일로 바꾸면 다 이해되는 말이다. 이제 남편이 한 말을 되돌려주고 싶다.

'한국 사람도 정이 많아. 속도 엄청 깊어. 그러니까 한국어 공부 좀 하시죠, 오 서방님?'

 

ⓒ 2022. 이현주
중국을 사랑하는 오서방 / Gernan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