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그만 열심히 살기로 했다
2020년 10월 어느 금요일 밤, 나는 부엌에서 정신을 잃었다.
쓰러지던 찰나의 기억은 없다. 다급하게 나를 깨우던 남편의 목소리와 뒤통수의 통증만 떠오를 뿐이다. 구급차로 실려 가는 동안 의사가 점심에 뭘 먹었는지 물었지만 나는 답할 수가 없었다. 내가 뭘 먹었더라...
의사는 스트레스가 원인인 듯하다고 했다. 한 달 병가를 내고 집에서 쉬기로 했다. 직장 동료들에게는 미안했지만, 죽다 살아오니 보이는 것이 없었다. 병가로 쉬는 동안 시간을 되감아 봤다. 코로나 염병 때문에 2020년 3월 중순부터 시작한 재택근무는 반년을 넘기고 있었다. 새 제품 출시를 앞두고 나는 밤에 쉽게 잠들지 못했다. 자려고 누웠지만 안 풀리는 문제를 끌어안고 머릿속으로 기나긴 줄의 코드를 쓰며 이리저리 뒤척이다가 간신히 잠들곤 했다. 창궐한 염병때문에 집 안에 갇힌 채 스트레스가 임계치를 향해 치달았지만 들여다볼 겨를이 없었다. 그러다 나는 쓰러졌다. 정신이 번쩍 났다. 2024년으로 계획했던 퇴사를 앞당기기로 했다.
쓰러지고 나서 나는 1년 2개월을 더 일했다. 회사를 그만두기로 결심하고 끝이 보이니 나를 넘어뜨린 스트레스는 열정으로 바뀌었다. 눈 부라리고 쪼아대던 회의에서 끝까지 듣는 여유도 생겨났다. 밉상인 동료마저 애틋해졌다. 직장인으로 사는 오늘은, 은퇴자로 사는 내일이 그리워할 시간이었다.
여전히 염병이 기승을 부리는 바람에 100% 재택근무만 가능했던 때였다. 회사가 있는 루르(Ruhr) 공업지대의 내 집에서 일하든, 스위스의 융프라우(Jungfrau) 꼭대기에서 업무를 보든 일하는 장소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았다. 복잡한 공업지대에서 계속 살 이유가 없었다.
2021년 가을, 남편과 나는 도나우(Donau)강이 흐르고 산에 둘러싸인 동네로 이사했다. 그리고 재택근무를 한 지 2년이 되어가던 2021년 12월에 나는 54세의 나이로 '월급 꼬박꼬박 나오는, 잘 다니던' 직장에서 퇴사했다. 독일에서 학생으로, 소프트웨어 개발자로 치열하게 살았던 나의 전반생에 스스로 휘슬을 불었다.
돌이켜보니 코로나 염병은 내게 위기가 아니라 후반생의 문을 여는 기회였다. 내 안의 소리에 귀 기울이게 했으며 인생의 판을 새로 짜는 트리거가 되었다. 이제 나는 지금껏 달리던 발을 멈춰 가보지 않은 길을 걸어볼 참이다. 그 길에서는 열심히 말고 재밌게 살고 싶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