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튼, 합격

본(Bonn) 대학교에서 공부할 때의 일이다. 한국에서 고등학교는 문과였고, 대학에서는 독일어를 전공한 내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부전공으로 컴퓨터공학을 공부하기로 했다. 훗날 내 박사논문 지도교수인 렌더스(Prof. W. Lenders) 교수가 논문 지도를 받고 싶으면 실력부터 갖춰 오라고 했으니 나는 기초부터 제대로 공부할 셈이었다.
첫 학기에는 몇몇 전공 수업을 들었지만, 두 번째 학기에는 오로지 부전공 딱 한 과목만 수강 신청했다. <컴퓨터공학 입문 I>. 컴퓨터공학을 전공으로 공부하든, 부전공으로 택했든 꼭 통과해야 하는 과목이었다. 이 과목을 이수하지 못하면 부전공을 바꾸거나 대학을 옮겨야 했다.
계단식 강의실은 500명은 족히 돼 보이는 앳된 얼굴의 새내기들로 늘 도떼기시장 같았다. 교수는 수업 내내 여섯 면의 초록 칠판에 착 달라붙어 쓰고 또 썼다. 질문과 토론 없는 교수의 일방적 전달이었다. 이런 형태의 강의를 기초 과정에 있는 Vorlesung이라고 한다. 다섯 번째 칠판이 분필로 쓴 글자와 숫자로 가득 채워지면 조교가 물이 가득 담긴 커다란 양동이를 들고 강단으로 올라왔다. 양동이 물에 스펀지를 적셔 맨 왼쪽 칠판부터 지우고 창 닦는 밀대로 물기를 제거했다. 이렇게 쓰고 지우기를 서너 번 하다 보면 두 시간 수업이 끝나 있었다. 수업 내용 들으랴 칠판에 쓴 것 노트에 옮겨 적으랴 그야말로 혼비백산이었다. 다 못 알아듣는 독일어는 그렇다 쳐도 칠판에 갈겨쓴 글씨는 나에게 상형문자였다.
조교들의 '방과 후 과외'가 없었더라면 도중에 포기한 학생들이 많았을 것이다. 나 역시 조교들의 과외 덕을 톡톡히 봤다. '~카더라' 통신에 의하면, 첫 학기가 끝나면 컴퓨터공학과 신입생의 절반이 떨어져 나간다고 했다. 실제로 나와 조별 과제를 같이 했던, 컴퓨터공학을 전공하려던 남학생은 학기 도중에 대학 자체를 포기하고 직업훈련소로 옮겨갔다.
방과 후 과외에서는 수업 내용에 대한 질문을 받고 수학을 보충했다. 컴퓨터도 모자라 수학까지 공부하려니 그간 방만히 쉬고 있던 좌뇌가 과부하로 폭발 직전이었다. 어느 날 수학 보충 때 'Neutrales Element'라는 말이 여러 번 언급됐다. 가뜩이나 어려운 수학에 모르는 말까지 등장하니 당최 무슨 내용인지 알 수가 없었다. 안 되겠다 싶어 손을 번쩍 들었다.
"Neutrales Element가 뭐야?"
순간 방 안의 공기가 달라졌다.
'너 지금 설마 이것도 모르고 컴퓨터공학 공부한다고 앉아있는 거임?' 딱 봐도 이런 생각을 하던 조교는 찰나의 당황을 수습하고 친절하게 설명해줬다.
"3 + 0은 3이지? 3 x 1은 3이지? 이렇게 어떤 수를 연산했을 때 처음의 수가 되도록 만들어 주는 수, 즉 덧셈에서는 0 그리고 곱셈에서는 1을 Neutrales Element라고 해."
"......"
이 친절한 설명에 내 등줄기에 땀이 또로록 흘렀던가, 아니면 내 눈썹이 꿈틀거렸을까, 그도 아니면 질문의 답을 기다리며 또랑또랑 뜨고 있던 두 눈을 감아버렸을까.
항등원! 나도 그거 안다고, 단지 독일어 표현을 모를 뿐이었다고 토해내듯 말했더라면 덜 민망했으려나.
이후 나는 컴퓨터와 수학의 독일어 표현을 표로 작성해서 달달 외웠다. 다행이 수업 내용이 점점 귀에 들어오기 시작했다.
수업을 듣고 조교들의 과외를 받았다고 시험을 볼 수 있는 것은 아니었다. 매주 강의가 끝날 때마다 서너 개의 과제가 적힌 A4 용지를 받았는데, 조별 과제였다. 모든 조별 과제에서 평균 점수가 50점 이상 되어야 필기시험을 볼 자격이 주어졌다. 이후 필기시험에서 50점 이상을 받아야 비로소 과목 이수로 인정되었다. 다행히 좋은 팀을 만나 조별 과제 점수로 50점 이상을 받았다.
강의는 끝났고 조별 과제도 합격이니 필기시험만 앞두고 있었다. 주말마다 일주일 치 식량을 미리 사놓고 오직 시험 준비에만 매달렸다. '50점만 넘자!'가 내 목표였다. 중고등학교 다닐 때 50점이 목표였던 적이 있었던가......,
시험 시간에 책과 필기 노트가 허용되었다. 시험 중에 참고 자료를 볼 수 있으니 천군만마를 얻은 듯했다. 하지만 시험지를 받는 순간 알았다. 책과 필기 노트는 아무 소용이 없다는 것을. 시험 시간에 교수와 등장한 조교들은 신속하게 시험지를 나눠줬다. 예닐곱 장의 A4용지 시험지를 서둘러 넘겨봤다. 각 장에는 딱 한 문제만 적혀 있었다. '프로그램을 쓰시오', '증명하시오', '연산 과정을 적으시오' 등. 스물다섯 해를 사는 동안 묶음 시험지를 본 적도 처음이고, 증명하는 과정을 쓰라는 시험 유형 또한 처음이었다. 두 시간의 시험을 끝내는 종이 울렸지만 누구 하나 일어서서 나가는 사람이 없었다. 10분만 시간을 더 달라는 처절한 외침이 어디선가 들렸다. 연장된 10분이 지나 조교들이 시험지를 거둬갈 때까지 답을 적어내느라 여기저기서 안쓰러운 실랑이가 벌어졌다.
몇 주가 지나 시험 결과가 발표되었다. 학과실 벽에 붙은 합격자 명단에 내 수험번호는 없었다. 올인했던 시험에서 나는 떨어졌다. '합격자 명단에 없는 사람은 조교실로 올 것'이라는 공지를 보고 조교실을 찾았다. 조교가 보여준 내 시험지에는 50에서 반토막 난 점수가 적혀 있었다.
'내가 어떤 마음으로, 어떤 각오로 치른 시험인데 이 점수라니!'
절망감이 밀려왔다.
그런데 채점 방식이 생소했다. 10점짜리 문제가 틀렸다고 0점을 주는 것이 아니었다. 비록 답을 맞히지 못했더라도 답을 찾아가는 과정과 증명하는 과정에서 옳은 부분에는 상응하는 점수가 매겨졌다. 4지 선다형 시험방식에 길들어 있던 내게는 정말이지 익숙지 않은 시험이었고 채점방식이었다. 조교는 방학 중 재시험 안내를 하며 어느 부분을 집중적으로 공부해야 할지 귀뜸해 주었다.
학사 원칙에 따라 부전공이라도 재시험마저 떨어지면 본 대학에서는 더 이상 컴퓨터공학을 공부할 수 없었다. 다른 부전공을 택하든가, 아니면 다른 대학에서 공부해야 했다. 독일의 도시에는 보통 하나의 대학만 있으니 이 공부를 하려면 다른 도시로 이사를 해야 했다. 나는 더 이상 물러설 곳이 없었다. 재시험에 무조건 붙어야 했다. 나를 공황에 빠뜨린 시험 유형과 유연한 채점 방식을 알았으니 공부하는 방법도 달라졌다. 단언컨대 내 오십여 년 인생에서 그때만큼 처절하고 치열하게 공부한 적은 없었다. 재시험을 보고 난 후 그 어떤 후회와 미련도 없었다.
새 학기가 시작되기 전에 재시험 결과가 나왔다.
합격.
과목 이수증을 받으러 간 조교실에서 재시험 성적을 확인할 수 있었다. 내 점수는 딱 50점이었다.
본 대학에서 계속 공부해도 된다는 빨간 도장같은 50점을 본 순간, 나는 왈칵 눈물을 쏟을 뻔했다. 내 소중한 턱걸이 50점. 애초 50점만 넘자던 목표를 이뤘다. 목표대로 되는 것이라면 100점으로 할 걸 그랬나? 아니다, 100점 못지않은 50점이었다. 내게는 기막힌 반전 드라마였고 올림픽 금메달 같은 50점이었다.
이후 기초과정 과목인 <컴퓨터공학 입문 I> 이수증에는 점수 없이 달랑 'bestanden(합격)' 이라고 쓰여있었다.
아무튼, 합격이었다.
